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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결산① : 서해로 시작하여 서해로 끝난 한 해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1. 2.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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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구속 상태였던 12월 중순에 쓴 연재글로 사정상 당시 발표하지 못하여 지금 발표합니다.

* 새해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작년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되어 글을 발표합니다.


월간지는 보통 그 달이 시작하기 전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월말에 터진 대형사건을 다루기 어렵습니다. 아마 모든 월간지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월간 <민족21> 12월호를 보면 ‘송년기획 2010년 한반도 10대뉴스’가 나옵니다. 아마 다른 월간지들도 비슷한 기사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니 당연히도 11월 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은 빠져있습니다. 12월 말에 2010년 10대 뉴스를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갈 사건이 바로 연평도 포격사건이겠지요. 그리고 보면 올해는 서해에서 참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필두로 북한의 대규모 포격훈련, 연중 쉴 틈 없이 벌어진 한미 연합훈련들, 특히 항공모함 서해 진입을 두고 근 반년을 옥신각신한 일, 그리고 끝으로 연평도 포격사건(과연 이게 끝일지도 아직은 지켜봐야 할 듯) 등으로 서해는 한반도 화약고로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2010년은 ‘서해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왜 하필이면 서해인지, 왜 올해 유독 서해위기가 집중됐는지 정확히 알아야 향후 한반도 평화를 지킬 묘안도 나오겠지요.


왜 하필이면 서해인가


보통 분쟁지역은 불분명한 경계선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바다에는 눈에 보이는 선을 긋기 어려우니 더 심합니다. 지금 동북아의 분쟁지역, 혹은 한 쪽에서 분쟁지역화를 원하는 지역은 독도(한-일), 센카쿠 열도(중-일), 쿠릴 열도(러-일) 등 모두 바다의 섬들입니다. 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해 5도가 이남 관할이면 주변 해역도 당연히 이남 관할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통일 전 독일의 서베를린은 서독관할이었지만 동독 영토 한가운데 외로운 섬처럼 존재했습니다. 어디선가 관할권을 규정해 놓아야 누구 관할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남북의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에 기술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서해는 서해5도를 제외하고는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강하구에서 바다로 나오면서 군사분계선 규정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문제의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 유엔사령관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말 그대로 이승만 정부가 북진하지 못하도록 한계선을 그은 것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북한에 정식 통보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김영삼 정부시절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북한 배가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해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진술한 겁니다. 지난 12월 9일 미국 국제정책센터 셀리그 해리슨 선임연구원은 한겨레 기고글에서 ‘(전 한미 제1군단 사령관이었던 커시먼 중장이 최근) 북한과 상의없이 임의로 그어진 북방한계선(NLL)을 남쪽으로 내려서 다시 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북방한계선은 영구불변의 확고한 경계선이 아니란 것입니다.


원래 영토, 영해는 한 나라의 주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보통 헌법에 포괄적으로 규정하며 관련 법령을 통해 엄밀하게 기술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표현하여 남북의 경계를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의 경계는 정전협정이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1992년 9월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가운데 불가침부속합의서 10조를 보면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가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하여 서해 경계선을 확정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에 대해 남북이 이견이 있기 때문에 북방한계선을 경계선이라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북방한계선이 서해의 경계선이란 ‘물증’이 없는 셈입니다. 이는 얼마 전 타계하신 리영희 교수님의 관련 논문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2007년에 제가 EBS 토론카폐라는 토론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제 공중파 첫 데뷔작이라 할 수 있죠. 남북관계 관련 주제였는데, 제가 보수쪽 토론자에게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질문을 했더니 이 분이 흥분하면서 반미는 위험하다느니 하면서 색깔론으로 나가다가 나중에는 NLL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반국가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더군요. 아니, 왜 북방한계선은 언급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걸까요? 확실한 물증을 내놓으면 논란 자체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마치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내놓지 못하면서 정부 발표를 의심하지도 못하게 위협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북방한계선 사수를 주장하는 이들의 맹점은 바로 ‘물증’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논란 자체를 틀어막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고 리영희 교수님도 서해관련 논문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을 때 대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양측이 협상을 통해 경계선을 긋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실력으로 점거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싸우는 것보다는 대화로 푸는 게 좋겠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북방한계선이 남북사이 경계선이므로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점거하려 합니다. 그런데 실력으로 점거하려면 압도적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비슷한 세력끼리는 오히려 싸움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점거’에 맞서 국제 해양법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서해 경계선을 주장하였고 남북은 두 개의 경계선을 서로 주장하는 사실상의 ‘분쟁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해는 크고 작은 충돌로 인해 위험지대가 되었고 1999년과 2002년에는 인명피해까지 나는 대형 충돌로 번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정부는 두 번의 충돌을 계기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와 정반대의 길을 간 것입니다. 대화의 결과 남북 해군 사이에 핫라인이 개설되어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 성과를 이어 10.4 선언을 합의함으로써 서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10.4 선언을 이행하여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었다면 올해 서해에서 있었던 모든 위기와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식 대북정책이 불러온 우리 민족의 피해는 정말 역사에 두고두고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서해 경계선을 확실히 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왜 정전협정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빼먹었을까도 의문입니다. 당시 정전협상을 진행한 북한과 미국은 왜 경계선을 확정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서해의 군사적 중요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서해는 동해와 달리 섬도 많고 해안선도 복잡합니다. 경계선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군사적 유불리가 확연히 차이가 나겠죠. 게다가 남북의 수도와도 가깝습니다. 서울이나 평양이나 다 서해에서 최대한 근접하면 전쟁시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그러다보니 북미 양측 모두 서해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지금도 서해에는 무력이 집중되어 있어 한반도의 화약고가 된 것이겠죠.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그 시작은 서해가 될 것이란 전망도 많습니다. 그러니 10.4 선언 이행으로 서해 충돌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북간 군사적 대립 자체가,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북미간 군사적 대립이 사라져야 서해 위기도 사라질 것입니다.


왜 올해 유독 집중되었나


서해가 한반도의 화약고가 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유독 위기와 충돌이 잦았습니다. 그건 그만큼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긴장이 심각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매해 1년이 10년 같기는 한데 그래도 올 초를 한번 돌아봅시다. 새해 남북관계 이슈는 분명 정상회담이었습니다. 그만큼 남북관계 급진전이 예상되었다는 겁니다. 북미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이 평화협상을 적극적으로 제안했고 미국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기에 연내 평화협상이 시작되리라 다들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3월이 되도록 남북관계도, 북미관계도 뭔가 전진하는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여 붕괴시키고 중국도 견제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미 정가에 떠도는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관료들이 “급변사태설”에 매달린 건 사실 그것 외에 다른 길을 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기엔 미국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고, 협상을 하자니 역시 동북아에서 영향력이 위축되니 할 수 있는 건 북한이 망하기를 기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망하기는커녕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빠른 경제성장을 주장하는 한편 인공위성 발사, 핵실험 등으로 미국이 마냥 앉아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라 북한편이었습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12월 8일자 한겨레 대담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실효성도 없는 유엔제재에 매달리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과 더불어 핵 연료봉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하여 핵능력을 꾸준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라는 핵능력 강화의 명분도 확보했습니다. 미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북한은 평화협상카드를 내밀었고 별 수 없이 이를 받아든 미국은 곤혹스러워하다 결국 시간끌기 전략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를 멋지게 표현해서 ‘전략적 인내’라고 했지만 혹자는 ‘전략적 무능’으로 해석하더군요.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급변사태설”은 미국의 ‘믿음’에서 미국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퍼뜨리는 ‘구실’로 차츰 변질되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명분을 얻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연습에 매달렸습니다. 대규모 전쟁연습은 북한을 자극하여 북한의 강경대응을 불러오고 결국 대화를 중단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대규모 훈련의 하나인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와중에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한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연일 전쟁훈련을 해댔습니다. 훈련 내용도 대규모 해병대 병력으로 북한에 상륙작전을 가상한 훈련 따위의, 최대한 북한을 자극하는 것들이었습니다. 11월말 연명도 포격사건도 미군과 함께 하는 ‘호국훈련’ 와중에 터진 사건입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대규고 훈련은 사고나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이고 다시 고강도 훈련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올해 끊이지 않았던 국내 군 관련 사고들도 예년에 비해 훈련 강도가 높아졌음을 반영합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도 친이-친박 갈등, 4대강 문제, 세종시 문제 등 국내 사안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안보위기를 즐기는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활용하려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보수층은 결집시키고 반대여론을 무마하는데서 안보위기만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결국 정리해보면 협상에 자신 없는 오바마 정부가 시간을 벌기 위해 고강도 대북군사압박을 감행했으며 위기에 몰린 이명박 정부도 여기에 가세한 속에서 서해 위기가 고조됐고 올해 서해에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는 배경의 하나가 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이는 과거 한반도 정세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과거 비슷한 상황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현상만 보자면 실전이나 다름없는 대형 피해가 연거푸 일어났다는 점이겠지요. 이게 뭘 의미할까요?


근본적 변화가 예견된다


첫째, 동북아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올해 서해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겉으로 남북 사이의 충돌 같지만 실상은 미국, 중국은 물론 일본, 러시아까지 관여한, 동북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대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국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뭔가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는 말입니다. 가장 크게 변한 건 미국을 대하는 각국의 태도입니다. 미국의 경제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보여준 허약한 모습 때문인지 미국이 업신여김 당하는, 미국이 다른 나라 눈치를 보는 웃지 못 할 모양새가 연출된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이 원한다면 유엔안보리 결의에도 동참했던 중국이 올해는 뭐에 뒤틀렸는지 미국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때도 중국은 철저히 북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오는 것과 관련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G20을 앞두고는 환율문제로 으르렁거렸죠. 지금 중국의 분위기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민지원군’을 모집하던 것과 흡사합니다.


우습게도 중국이 세게 나오니까 이명박 정부까지 긴장했습니다. 단적인 예가 서해 항공모함 진입에 대한 입장입니다. 올해 5월말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 내린 이명박 정부는 조지 워싱턴호 모셔오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자극하는 게 부담된 미국은 항공모함 서해 진입을 거절했고 겨우 7월 동해 훈련으로 달랬습니다. 그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강경입장을 보이면서 항공모함 서해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이명박 정부가 거부 입장을 보였습니다. 여름 내내 중국의 거센 비판을 받은 나머지 이명박 정부가 몸사리기에 나선 것입니다. 미국이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던 이명박 정부가 ‘항명’을 하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등을 돌린 건 아니죠. 이번 FTA 재협상을 보면 다들 아실 것입니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가 중국 눈치 보느라 미국 심기를 건드린 건 그만큼 미국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질서변화는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 사이의 강한 충돌을 불러옵니다. 두 세력의 힘이 차이가 크면 오히려 충돌이 크지 않겠지만 힘의 균형이 뒤바뀌는 과정에서 충돌 규모는 정점에 이를 것입니다. 올해 서해 충돌은 그 규모로 볼 때 정점이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정점에 가깝다는 느낌은 듭니다. 아무튼 많은 이들이 이런 동북아 정세변화를 보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생겨나고 있으며 핵심은 미국의 약화와 중국의 부상이라고 분석합니다. 대체로 맞는 분석이긴 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역할입니다.


흔히 북한을 불안정하고 궁핍하여 중국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가끔 중국을 곤란하게 하는 “골칫거리” 나라로 인식합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연일 북한이 곧 붕괴될 것 같다는 분위기를 풍기느라 바빠 보입니다. 하지만 북중관계를 그런 종속적인 관계로 보는 게 맞을까요? 사실 90년대 중국이 한국과 손을 잡으면서 북중관계는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북한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행군’시기였습니다. 북한이 가장 어려울 때 중국은 북한을 돕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과 손잡고 대북제재에 협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경제가 훨씬 발전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지원 없이 버티지 못한다는 건 논리적 모순입니다.


특히 북한이 중국에게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는 흔적은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정말 중국에 의지하고 싶으면 한국과 미국이 하는 것처럼 매년 수차례 중국군대를 ‘모셔와서’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북-중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중국 무기로 무장할 것입니다. 또 북한이 중국의 눈치를 본다면 중국의 아시안게임 와중에 연평도에 포탄을 날리는 행동도 하지 않겠죠. 최근 한미일이 힘을 모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제발 북한을 막아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투덜거립니다. 도대체 북한이 중국말을 듣기나 하냐 이거죠. 북한과 중국이 매우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는 관계는 아닌 듯합니다. 자기 판단과 결심, 힘으로 동북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게 북한의 기본입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동북아 질서변화는 조만간 근본적인 국면전환을 예고합니다. 올해 서해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갖는 둘째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남북 사이에 여러 충돌이 있었지만 올해 서해만큼 긴박하고,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충돌도 드뭅니다. 물을 끓이면 온도가 올라가다 마침내 부글부글 끓듯 지금 한반도는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이 아니라 곧 폭발하려는, 물이 막 끓으려는 그런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외과수술식 타격이든(집도의가 미국이 아닐 수도...), 아니면 협상을 통한 근본적 질서변화-평화체제수립-든 말입니다.


북한은 여유롭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미국 인사를 불러다 핵시설과 핵무기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만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면 미국은 당황하여 북한을 더 압박하려 하고 그러다 군사적 충돌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껏 수차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극적 종말을 확인한 미국은 결코 전면전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도 갈수록 과감한 군사행동을 합니다. 설마 섬에 직접 포격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군사적 압박도 쉽지 않은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포기하고 핵확산 저지로 목표를 바꿨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최근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 저지에도 자신 없어 보입니다. 진퇴양난, 첩첩산중, 오리무중, 지금 미국 정책결정권자들의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은 점점 더 강력한 능력을 공개하고 미국은 갈수록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지는 상황, 연평도 사건 이후에 누가 자신만만해하고 누가 허둥대는지 뻔히 보이는 상황까지가 올해의 상황입니다. 이제 내년은 어찌될까요? 제발 전쟁이라는 카드를 꺼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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