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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은 미군의 종이폭탄인가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4. 10. 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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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살포를 두고 박근혜 정부의 행보가 혼란스럽다. 대통령은 열심히 대화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정작 대화의 전제조건이나 마찬가지인 대북전단살포에 대해서는 거의 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는 왜 대북전단살포 단체들에게 전전긍긍하는 것일까? 단지 지지세력의 이탈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어서일까?


물론 박근혜 정부는 대북전단살포를 가로막으면 북한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는 꼴이 되며, 향후 남북대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앞에서는 대화할 것처럼 하면서, 뒤로는 대북전단살포를 보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 정말 남북대화가 무산돼도 박근혜 대통령은 대화 의지를 충분히 밝혔다, 모든 것은 북한때문이다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대북전단살포는 명백한 불법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대북전단살포를 막고자 해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왜일까? 일단 대북전단살포가 합법인가, 불법인가에 대한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0월 20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이하 민권연대)라는 단체에서 세월호 관련 내용으로 청와대를 향해 풍선을 날리려고 하자 경찰은 청와대 인근이 비행금지구역이라는 이유로 이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군사분계선 일대도 비행금지구역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21일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은 ≪임진각 앞 광장은 항공법상 P-518로 구분되는 휴전선 비행금지구역이다. 국방부와 한미연합사에서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즉, 항공법에 따라 당연히 정부가 대북전단살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23일 통일부는 항공법 소관부처인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한 결과라며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사용되는 대형 풍선이 항공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 근거로 풍선이 지상에서는 조작이 불가능하며 통제가 안 된다는 점을 들었다. 


풍선을 통한 전단살포가 항공법 위반이 아니라는 정부 결론이 나오자 민권연대가 추진한 2, 3차 세월호 전단 살포에 대해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교통사고 등의 위험이 있다는 명분을 대며 전단 살포를 막았다. 


그런데 대북전단살포는 명백한 항공법 위반이다. 항공법 시행령 제14조에 따르면 무인 비행선 중 자체 무게 12kg 이하 길이 7m 이하의 경우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는 장치로 규정되어 있다. 일부 반북언론들은 이 규정을 들어 대북전단살포에 사용되는 풍선의 길이가 7m 이하라서 항공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대북전단살포 단체들은 풍선의 길이가 12m라고 스스로 이미 밝혔다. 따라서 대북전단살포에 사용되는 풍선은 정부에 신고해야 하는 풍선이 분명하다. 통일부가 지적한 ≪지상에서 조작이 불가능하고 통제가 안 된다는 점≫은 신고 대상이냐 아니냐와 상관이 없다. 


만약 정부가 법을 정상적으로 해석했다면 대북전단살포는 항공법 위반이 된다. 이 경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대북전단살포는 미국의 심리전 일환


첫째, 대북전단살포가 범법행위이므로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항공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면 경찰관직무집행법을 통해 정부가 전단살포를 막고 싶을 때만 막을 수 있다. 


둘째, 항공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대북전단살포를 막으려고 할 때 미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휴전선 비행금지구역을 통제하는 주체는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서 돌려받지 않겠다고 애걸하는 국방부의 특성상 사실상 이 구역을 통제하는 곳은 미국임을 알 수 있다. 즉, 미군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하는데 미군은 이를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북전단살포가 미국의 묵인 아래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대북전단살포 비용도 사실상 미국이 대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도 대북전단살포 단체에게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미국의 국무부, 디펜스포럼, 민주주의기금 등이 지원하는 액수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대북전단살포는 본질에서 미국의 심리전이며 탈북자단체는 그저 미국의 의뢰를 받은 하청업체에 불과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대북전단살포를 박근혜 정부가 가로막으면 미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 정부 들어 한미관계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심지어 유엔총회 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은 친중이 아니라 친미라고 고백하려다 언론에 폭로되기까지 했다) 박근혜 정부는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심리전은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8일 1200만 장에 달하는 삐라를 뿌렸으며 1953년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25억 장 이상의 삐라를 살포했다. 한반도를 20번 덮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당시 미국은 삐라를 <종이폭탄>이라 불렀다. 북한을 향해 24시간 방송을 하는 자유아시아방송도 미국 의회 출자로 1996년 설립된 대표적인 대북심리전 방송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경제적 압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북한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북전단살포가 급증하는 것과 시기가 일치하는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미군의 대북심리전이 남북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대북전단살포가 계속되는 한 남북고위급 접촉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올 들어 남북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전략핵폭격기, 핵항공모함을 동원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미국. 북한이 세 명의 고위인사까지 한국에 파견해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자 이번엔 대북전단을 가지고 남북대화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에게 휘둘리는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한국은 결코 미국의 속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014.10.31.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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