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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SOC 경협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10. 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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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2006년 개성공단 개발현장. 공업단지 조성을 위한 대형 배수관이 매설을 기다리고 있고, 각종 장비와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남북이 공동으로 전개하는 대규모 산업 기반시설이다. 남과 북은 90년대 금강산 관광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건설 분야 협력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남북 건설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더라면, 지금 한반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실 SOC, 사회 간접 자본은 도로와 철도를 놓고 항구를 건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업, 주거 등 각종 용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임대 공장과 임대 주택을 건설하는 것, 그리고 삼림과 하천을 정비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국토개발보전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광범위한 SOC 건설 사업이 북녘 땅에서 남과 북의 공동 협력에 의해 진행된다면 그 정치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남과 북의 건설 분야 협력은 사실상 정체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그가 선택한 건설 사업은 남과 북의 대규모 건설협력이 아니라 단군 이래 최대 공사로 알려진 ‘4대강 사업’이었다. 

황당하게도 한국 건설업계는 ‘4대강 사업’이 한창인 2009년 무렵, 오히려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2년 9월 현재 시공능력 기준으로 상위 100위권 건설사 중 23개사가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갔거나 법정관리 상태다. 2009년부터 시작된 건설업계 구조조정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문제아로 전락한 건설업계가 2013년 통일경제의 밑거름이 될 수는 없을까?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건설업 

한국은행은 8월 27일 발표한 한국 건설업계에 대한 현황진단 보고서에서 한국 건설업계가 이른바 ‘성숙기’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성숙기’라는 말은 건설업계가 구조적인 불황에 들어갔으며, 대규모 산업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한국은행의 이 같은 진단은, 한국 건설업계의 불황이 세계 경제 위기 여파 때문이라는 기존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건설업계가 구조적인 불황에 직면했다는 징후는 다양한 자료에서 입증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구대비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 인구가 감소할 전망이다. 대규모 주택을 지어봐야 살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 동안 건설사들이 호사를 누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신도시 조성과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국내에서 주택 건설사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은 기존 주택에 대한 개량 유지 보수 사업, 소규모 재개발 사업 등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정부가 발주하는 SOC 건설투자 전망도 어둡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인 신규 도로건설과 유지보수 사업이 최근 5년 간 연평균 0.6% 증가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건설 회사들을 먹여 살리려면 또다시 4대강 사업 같은 억지 프로젝트를 하던지 멀쩡한 도로를 뒤엎든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건설업계가 장기침체에 빠지자 건설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2011년 여름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덤프트럭, 레미콘, 굴삭기 등의 건설 중장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건설기계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노동기본권 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건설 기계 업자들 사이의 과당경쟁으로 만성적자, 신용불량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절규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기계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정부에 가하는 로비 때문에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된 상황이다. 

국내 건설업 불황이 몇 년 째 장기화되자, 대형 건설사들은 그나마 해외로 눈을 돌려 살 길을 찾고 있으며, 중소 하청 건설업체들과 영세 건설장비 임대업자,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2012년 한국 건설업의 현주소다. 

높아만 가는 북한 SOC 투자 수요 

반면 북한의 SOC 투자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미 2000년대부터 청년영웅도로(평양-남포 고속도로), 강원도 임남댐, 안변청년발전소, 평북 태천발전소, 자강도 희천발전소, 개천-태성호 수로공사 등 대규모 토목공사부터 북한식 뉴타운이라 할 수 있는 평양 창전거리 조성사업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건설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4월 27일 국토 관리 사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중앙일보가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한 5월 8일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4월 27일 발표한 논문은 평양시와 지방도시 건설로부터 토지관리와 보호사업, 산림조성과 보호관리, 물 관리, 도로 건설, 환경보호 사업 등 사실상 SOC 전 분야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망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국토관리 총동원운동’을 전개하여 SOC 건설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북한이 서해안 선천 앞바다의 여러 섬을 연결하여 대규모 간석지를 확보하는 ‘홍건도 간석지 건설’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통일뉴스에 9월 7일자로 보도되었다. 



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볼 때 북한이 2012년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본격화할 SOC 투자가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북-중 경제협력도 북한지역 SOC 투자 요구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8월 13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대표로하는 50명의 대규모 수행단을 중국에 파견하여 나선지구 활성화 등을 포함한 경제협력 확대를 합의하였다. 이미 신압록강대교를 착공해 2014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과 중국은 8월 협의에서 나선지역에 대한 전력 공급, 통신망 확충 등 구체적 SOC 확충사업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훈춘-나선 간 도로보수가 완료되었으며, 나선경제무역지대에 상점과 식당, 호텔 등이 포함된 건물 16개동 규모의 대형 국제무역센터가 건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선지역을 이용하려는 러시아 역시 SOC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2년 안에 54㎞ 길이의 나진∼하산 철도 재건설을 마무리하고 나진항 화물터미널도 건설하는 등 경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제 특구가 활성화됨에 따라 북한 내 후속 SOC 투자요구는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SOC 경협 

주목할 지점은, 북한과 주변국들의 경협 확대는 제한된 경제 특구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투자일 뿐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국경지대가 아닌 내륙, 예를 들어 개성과 같은 지역에 대규모 경제협력을 시행한 대상은 지금까지 한반도의 반쪽, 한국이 유일하다. 앞으로 민족 공동 경제를 만들어가야 할 대상으로 한국을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북한의 전략적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북한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논문 발표를 계기로 SOC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장기간 이어질 이와 같은 SOC 투자에 구조적 불황에 빠진 한국 중소건설업체,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국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북한 SOC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2013년 한국 대통령이 남북 경협을 전면화하여 북한 SOC 건설에 남쪽의 건설기계 노동자들과 기업을 참여시킬 것을 제안한다면, 북한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현재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해외 건설 수주는 일부 대기업만의 돈 잔치일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이들이 벌어오는 돈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분배되지 않을뿐더러 외국에 건설한 SOC 그 자체도 한국 경제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건설 수주 대신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한반도에 SOC를 건설한다면 이는 우리의 후대가 직접 이용하게 될 민족 공동 경제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처럼 북한 지역에 대한 SOC 건설에 남과 북이 협력하는 것은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또 남북 SOC 건설 협력은 현실적으로 남과 북이 윈-윈 할 수 있는 확실한 분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SOC 경협은 한국 건설업 혁신의 기회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한국 건설업계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과 같이 업체 도산을 방지하고 긴급한 자금을 수혈하는 식의 땜질식 처방을 계속할 경우 한국 건설업계는 중소기업들부터 줄줄이 도산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는 계층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이다. 

한국 건설업계, 특히 중소기업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서 남북 SOC 협력은 해도 되고 안하면 그만인 대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유일무이한 대안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건설업 일감을 대규모로 제공함으로써 급격한 업계 도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 SOC 투자가 단순히 한국 건설업체의 탈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국 건설업체는 지난 60여 년간 정경유착의 온상이었으며 부동산 개발 광풍을 타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누려왔다. 한국 건설업체는 개발 광풍에 편승한 부동산 투기꾼들과 개발 관련 공무원들과 함께 ‘토건족’으로 힐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 SOC 협력은 한국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동시에 건설업계가 새로 태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당장 한국 건설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렵고도 많다. 무엇보다 ▶ 공적 개발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하고 재투자해야하며, ▶ 중소기업은 입찰조차 할 수 없게 되어있는 현행 ‘턴키 방식’ 입찰 제도를 개혁하며, ▶ 난립한 중소기업을 사업별 특화 전략과 함께 적정 규모로 통폐합하며, ▶ 이 과정에서 건설업 종사 노동자들을 인력 구조조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회사들을 통폐합하면서 노동자를 보호한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길은 남북 SOC 협력밖에 없다.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구조조정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문제들도 당연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남북 SOC 협력 과정이 자연스레 한국 건설업계가 혁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 새로 세워질 정부는 남북 SOC 협력을 위해 ‘통일 채권’을 발행하는 한편 발생하는 개발 이익을 ‘통일 경제 기금’으로 환수하고 재투자해야 한다. 또한 SOC 건설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 중소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해안 석유 시추 사업이나 발전소 건설 같은 대규모 플랜트 사업은 대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되, 중소기업의 시공능력을 키울 수 있는 도로 건설, 주택 건설 등 일반적 사업은 가급적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이처럼 남북 SOC 경협은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사업인 동시에 남과 북이 상생 협력할 수 있는 확실한 분야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남북 SOC 경협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건설 산업 종사자들에게 활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 이 글은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 출처 :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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