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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소송은 지식경제시대 수탈 방법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9. 2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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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소송과 한미FTA의 연관성
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총 1,049,393,540 달러 

삼성전자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으로 상징되는 애플의 고유 디자인 특허, 이른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를 모방했다는 대가다. 원화로 1조 2천억 원에 달하는 벌금은 삼성전자가 3달 동안 휴대폰을 팔아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에 가깝다. 

삼성전자만 특허 침해 소송을 진행 중인 것은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한국 대표 재벌들이 외국 기업, 주로 미국 독점자본에 특허 침해 혐의로 줄줄이 제소당한 상태다. 머니투데이 8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기업과 외국계 기업 간의 특허 소송은 지난 2004년 40건에서 2011년 278건으로 급증했다.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 먼저 제기한 소송이고, 그 상당부분이 미국 기업이었다고 한다. 

국내 중견 섬유 재벌인 ‘코오롱’은 미국 ‘듀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파라계 아라미드 섬유 ‘헤라크론’이 ‘듀폰’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1조 원 가량을 손해배상 하게 되었다. 아라미드 섬유 ‘헤라크론’은 코오롱이 30년간 개발해 온 고부가가치 방탄 섬유로 알려져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평면패널 디스플레이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LCD 제조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 ‘앤빅’에 의해 제소당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설계 원천기술로 유명한 미국 ‘램버스’사와 39억 5000만 달러, 약 4조4674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2012년 6월 일본 ‘신일본제철’이 전기 강판에 대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1조 4000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LG전자’와 ‘LG이노텍’은 LED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독일 ‘오스람’이 제기한 특허 침해 예비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하여, 최악의 경우 LED를 부품으로 사용하는 TV와 모니터, 조명기구 등이 독일에 수입 금지 처분될 위기에 처해있다. 

특허제도는 본래 발명가의 권리를 보호하여 새로운 발명, 최첨단 혁신을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특허제도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부 독점 기업에 의해 하나의 ‘경쟁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외국 독점자본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특허소송을 둘러싼 의미는 무엇일까. 경제 대국들이 벌이는 보호무역일까? 아니면, 한국 기업이 세계 일류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는 증거일까? 

기업 생존까지 위협하는 특허 소송 

삼성전자가 애플과 미국 지방법원의 판결에 의해 단기적으로 입게 될 피해는 2조 2000억 원 정도로 추산되었다. 하이투자증권 보고서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손해배상금 1조 2천억 원에 갤럭시S2 등 관련 제품의 판매금지로 1조 원 가량의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휴대폰 중 미국에서 판매되는 휴대폰은 12% 정도에 불과하고 18조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삼성그룹에게 2조 2000천억 원의 피해는 심각한 타격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코오롱의 사정은 다르다. 코오롱은 사실상 기업의 명운을 건 30년간의 투자 성과가 재판 한 번으로 사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코오롱은 미국 듀폰에게 무려 1조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20년간 전 세계 생산 및 판매 금지라는 가혹한 판결을 받았다. 머니투데이 8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만약 전 세계적 생산 및 판매 금지 처분이 앞으로 유지될 경우 당장 코오롱은 구미공장 ‘헤라크론’ 사업부를 폐쇄해야할 지경이라고 한다. 

문제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부 외국 독점 기업과 특허소송을 통해 이익을 내는 ‘특허괴물’인 특허전문관리기업(NPE)들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KBS 7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연루된 특허소송이 대기업의 2배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중견 재벌이라는 코오롱이 특허 소송으로 휘청거릴 지경인데 중소기업은 오죽일까. 중소기업은 특허 관리 전문 인력이 아예 없는 경우도 35%에 달하고, 설사 소송을 하더라도 소송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ETNEWS 4월 24일 보도 내용의 일부이다. 

서울반도체가 닛치아와의 2006년부터 3년간 특허소송으로 2008년에만 323억원의 비용을 지출한 것은 증시에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서울반도체는 이 때문에 2008년 11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소송비용으로 영업이익을 모두 날린 셈이다. 국제특허 소송 비용 증가는 중소·중견기업에 경영상 치명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허 소송에 따른 국내 중소기업의 공포감은 국민일보 9월 7일자 보도 내용에도 잘 드러나 있다. 

실제로 대부분 중소기업은 소송이 들어와도 협상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IT 업체인 D사의 직원은 “우리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은 게 확실한 데도 소송까지 가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특허 침해를 인정하고 협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 소송을 두고 단순히 “경제 대국들의 보호무역 강화 추세”라던가 “후발 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 나아가 “한국 기업이 세계 일류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들이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지 알 수 있다. 

사업은 하지도 않으면서 특허소송을 통해 이익을 내는 특허전문관리기업(NPE)이나 원천기술을 보유한 극소수 독점기업들은 명백하게도 ‘특허’를 무기로 다른 기업들을 무차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에 드러난 삼성-애플 소송의 본질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이에 대한 해답은 한미FTA에 잘 나와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 분야의 개방 및 보호를 거세게 요구했다. 김종훈을 비롯한 협상팀은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글로벌 스탠다드’인양 너스레를 떨며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미국은 먼저 한국과의 FTA 중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에서 특허와 저작권 등 각종 지적재산권의 기한 연장에 주력하였다. 미국은 출원일로부터 20년으로 제한된 국제적인 특허존속 기간을 3년 내지 4년 더 연장하기 위해 “특허 심사 처리가 늦어져 지연된 경우 지연된 기간만큼 특허존속 기간을 연장 한다”는 ‘꼼수’를 부렸다. 겨우 3, 4년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삼성전자가 일 년 동안 각종 특허에 대한 사용료로 외국 기업에 지불하는 돈만 1조 원을 넘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미국은 특허가 아닌 기타 저작물의 경우 “인간의 평균수명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기존의 50년이던 저작권 기한을 70년까지 연장했다. 한국의 경우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것이 1945년이므로 저작권 기한을 70년까지 연장해봐야 해당될 저작물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전 세계 문화 컨텐츠의 40% 가량을 독점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입장이 그대로 협정문에 반영된 것이다. 미국이 최대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의약품 관련 저작권 기한도 당연히 연장되었다. 

미국은 한미FTA 협상에서 특허나 상표 등 저작권 침해에 대한 피해 보상도 대폭 강화했다. 상표권의 경우 손해 내용 없이 침해사실만 입증하는 것으로 5천만 원까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협정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협정을 통해 기대했던 이익이 무너졌다는 주장만으로 상대방을 제소할 수 있다는 이른바 ‘비위반제소’ 제도라는 것도 있다. 미국은 의약품같은 경우 아예 제약회사가 약값 결정에 참여하게끔 제도화함으로써 ‘애초에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협정문에 관철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이미 근래 진행한 칠레, 싱가포르, 호주, 바레인, 중앙아메리카(CA-FTA) 등과의 FTA에서도 지적재산권 분야를 주된 공략 대상으로 삼고 일관되게 한국과 유사한 협정을 체결해 왔다. 한국에게 최악의 불평등 협정이라는 한미FTA가 미국으로서는 화룡정점인 셈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무기로 제조업 위기를 벗어났던 미국이 2000년대 금융부문의 위기에서 지적재산권을 무기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애플이 삼성에게 걸었던 특허 침해 소송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도 아니요, 한국 기업이 세계 일류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자신의 강점인 지적재산권을 앞세워 장기 불황,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경제를 살려보기 위해 상대방을 강탈하고 어떻게든 이윤을 증가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면 경제 위기에서 허우적거리는 미국, 미국경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삼성과 애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특허소송은 미국을 비롯한 거대 독점기업들의 주도아래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강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을 통해 한국에 관철하려 했던 것은 상대방에 대한 손쉬운 강탈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한미FTA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이른바 ‘특허괴물’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될 것이다. 

지식경제시대,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적재산권을 앞세운 미국의 이 같은 이윤 추구 전략은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오히려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식 기반 경제라는 것이 바로 특허나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적 혁신과 경쟁, 그리고 이윤창출을 뜻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미국에서 벌어진 특허 또는 영업비밀 관련 소송에서 한국기업이 미국기업에게 이긴 선례가 거의 없다” - 머니투데이 8월 31일자 보도 

이 말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 출신 모기업 대표이사가 내뱉은 말이다. 화려한 신화로 포장된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와 화면 조작기술 관련 특허 몇 개를 무기로 한 애플에게 1조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하고, 무수한 중소기업이 ‘특허괴물’에게 소송을 당하여 휘청거리는 시대가 바로 한국인이 처한 ‘지식경제시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이 2012년 상반기동안 지식재산권 사용료로 외국에 지급하는 금액이 43억 800만 달러, 약 4조8900억 원을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 증가한 수치다. 제아무리 한국이 세계4위 특허대국이라지만, 경제위기에도 여전히 원천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며 패권적 지위를 놓지 않으려는 강한 욕망에 휩싸인 미국을 상대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적재산권이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수탈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인류의 진보를 위해, 생산력 발전을 위해 사용되려면 현재와 같은 독점적 성격이 강한 국제 특허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에 공정한 무역, 거래, 협력관계가 성립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근본적 대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2012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 눈앞에 펼쳐진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한미FTA를 폐기하는 것, 한미FTA를 폐기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한미FTA는 자동차 몇 대 수출 더하고 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거대한 괴물이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제시하는 한미FTA, 무역정책에 관련된 공약을 눈여겨 볼 일이다.


* 출처 : 우리사회연구소 http://urisocie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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