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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이는 누구인가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2. 5.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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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점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당을 강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편가르기식, 마녀사냥식 해법은 결코 당을 강화할 수 없다. 부실조사로 일관하고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나 하는 지금의 진상조사단에게 진실 규명을 맡길 수 없음도 자명하다.

 

진보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이는 누구인가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통합진보당이 위기에 처했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하루아침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당내의 논란은 위험수위에 있으며, 진보적인 인사, 언론들도 모두 나서서 통합진보당을 비난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흡사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보는 듯하다.

 

많은 이들은 한국 내 유일한 진보적 원내정당인 통합진보당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데 대하여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도대체 현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며, 누가 위기를 불러 일으켰는지, 문제는 무엇이며 해법은 어디에 있는지 하루빨리 찾지 못하면 통합진보당이 입을 타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반일운동 최대의 비극, 민생단 사건

 

통합진보당 사태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2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21>에 연재한 역사이야기 가운데 민생단 사건 부분이 있는데 이를 요약 발췌해본다.

 

일제가 만주를 강점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32년 2월, 일제는 친일조선인들을 동원해 민생단이라는 정치조직을 결성했다. 하지만 이 조직은 불과 5개월 만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다시 3개월 후에는 완전히 해산되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조선인 당원들이 이 조직과 비밀리에 연결되었다는 의심을 하였고 당내 조선인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1932년 말에 시작된 민생단 숙청은 1935년 초까지 약 2년 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되다가 1936년 초에 가서야 중단되었다. 현재 중국공산당이 인정하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만도 근 500여 명이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일제의 토벌에 희생된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수보다 더 많은 이들이 민생단의 이름으로 처형됐다고 한다.

 


조선인 부락을 토벌하는 일본군

 

이들의 죄명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 이런 식이다. 한 마디로 마녀사냥을 한 것이다. 특히 안타까운 건 민생단이란 누명을 쓰고 희생된 이들은 대개 반일독립운동의 일선에서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이 민생단 마녀사냥에 이성을 잃은 계기는 반경유 살해사건이다. 1933년 5월 훈춘유격대 정치위원 박두남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순시원으로 간도에 온 반경유(조선인으로 본명은 이기동)를 살해하고는 일제에 투항하여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러나 민생단 사건에는 더 깊은 내막이 있다.

 


순시원 반경유

 

민생단 사건의 원인으로 흔히 중국인의 대한족주의로 인한 조선인 차별, 1930년대 전반 중국공산당의 좌경노선, 그리고 일제의 모략책동 등을 지목한다. 그러나 이런 원인들은 간도뿐 아니라 전체 만주에 공통적인 현상이었으며 민생단 마녀사냥에 조선인들도 동참한 사실을 설명할 수도 없다. 특히 혁명세력에 간첩을 침투시키고 내분을 일으키기 위한 공작을 하는 모략책동은 비단 1930년대 초반의 간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국의 혁명운동사에서 공통적인 일이다. 한홍구 교수는 여기서 색다른 분석을 제시한다.

 

혼란이 불러온 마녀사냥

 

간도의 독립운동가들과 농민들은 총도 제대로 없이 불과 수십 명의 청년들로 시작한 유격대가 어떻게 강대한 일본제국주의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의 답을 당의 무오류성에서 찾았다. 이들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당과 당의 영도를 받는 유격대가 그들을 승리와 해방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하나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신념과 현실은 달랐다. 중국공산당의 노선에 따라 건설한 소비에트가 현실에 맞지 않아 많은 문제를 낳았으며, 유격근거지는 여전히 일제 토벌대에 시달렸다. 만주성위 순시원 자격으로 동만특위에 내려 온 반경유는 여기서 손쉬운 해답을 제시했다. 소비에트 좌경노선을 채택하고 집행한 것은 바로 정체를 숨긴 채 당에 잠입한 민생단원들의 작간이었다는 것이다.

 

반경유의 진단과 처방은 몇몇 불행한 희생양을 민생단으로 만들어 당의 무오류성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생단으로 지목된 박두남이 반경유를 살해하고 도주하여 일제에 투항한 사건은 민생단이 당과 유격대에 다수 잠입하여 있으며, 이들 때문에 당의 올바른 노선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반경유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한 격이 되었다.

 

반경유의 죽음과 박두남의 도주가 준 충격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가릴 것 없이 간도 유격근거지의 당과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당의 무오류성에 대한 맹신은 일제가 한국민족주의자, 종파분자들로 구성된 민생단을 혁명대오에 잠입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당은 과거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그 문제점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당이 범한 잘못을 시정하는 대신, 모든 과오의 책임을 당내에 잠입한 민생단에 돌리며 민생단 마녀사냥을 대대적으로 벌려 나갔다. 이는 당이 자기반성의 기회를 빼앗긴 것을 의미했다.

 


중세 마녀사냥

 

중세와 근대 사이에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의 원인에 대한 유력한 설명의 하나는 14세기 이후 유럽이 겪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적 변화와 혼란이 중첩된 총체적 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도의 대중들 역시 일제 강점, 이민, 토벌, 피난, 소비에트 건설이라는 급속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불과 3,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간도라는 지극히 좁은 공간 속에서 대단히 집약적으로 겪어야 했다. 이런 엄청난 변화가 준 속도감과 충격과 혼란은 간도 조선인 주민들이 정신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부정선거의 실체에는 무관심?

 

민생단 사건에 대한 한홍구 교수의 독창적인 분석은 지금 통합진보당이 겪는 혼란을 분석하는 데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통합진보당은 작년 한 해 온갖 논란 속에서 가까스로 세 개의 정치세력이 통합을 이루자 곧바로 야권 단일화 과정을 거쳐 총선까지 내달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새로 입당하기도 하고 탈당하기도 했으며 2008년 민주노동당 탈당 사태에 버금가는 혼란도 있었다.

 

내부에서는 이처럼 혼란스러운데 외부에서는 진보정당의 성장에 위기를 느낀 보수세력과 사이비 진보세력들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색깔론, 도덕성 흠집 내기, 이간질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총선 결과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고 말았다. 진보대통합으로 원내 교섭단체에 진입할 것이라 믿어왔던 당원들과 대중들은 혼란과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이 때 갑자기 비례후보 경선이 총체적 부정선거였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제부터 모든 화살은 여기에 집중되었다. 지도부와 비례의원 사퇴만이 정답이고 그 이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은 총선에 대한 내실 있는 평가를 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

 

실제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도 중요치 않다. 부정선거의 실체와 근거가 부족하다, 총체적이라는 표현은 과도하다, 진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곧바로 당권파로 매도되고 숙청의 대상이 된다. 도대체 진상조사단조차 부실조사임을 인정한 진상조사보고서를 왜 언론에 공개하여 통합진보당을 부정부패당으로 먹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진실을 덮기 위한 사퇴는 문제

 

통합진보당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당을 강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편가르기식, 마녀사냥식 해법은 결코 당을 강화할 수 없다. 부실조사로 일관하고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나 하는 지금의 진상조사단에게 진실 규명을 맡길 수 없음도 자명하다.

 

대중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도부와 비례의원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실을 덮는 결과가 나온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정당들도 문제가 터지면 지도부를 교체해왔지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지도부 교체가 능사는 아니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합의하고, 혁신하는 게 정도(正道)다. 지금 통합진보당이 해야 할 일은 진짜 민생단을 잡는 것이지 민생단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몰살하는 게 아니다.

 

끝으로 지금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이들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모두가 자신을 피해자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라 하더라도 반성할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 지금껏 어떤 식으로 통합진보당 활동을 해 왔기에 이처럼 대중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고립되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하고, 실무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대중의 신망을 얻지 못하면 진보는 설 자리가 없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어 통합진보당이 더 튼튼한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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