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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 통일부 장관 기용의 숨은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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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_달 2011. 9.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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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브리핑] 넘어야 할 산은 북한 아니라 청와대 강경파

기사입력 2011-09-07 오전 7:44:42

지난 8월 31일 '재수' 끝에 류우익 전 주중 대사가 통일부 장관에 지명됐다. 그는 지난 5월 개각 때도 통일부 장관 기용 통고까지 받았지만 여야의 측근 중용인사에 대한 반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수정 논란 등으로 제외된 바 있었다.

류 내정자의 일성이 주목된다. 그는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하는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생각"이라고 강조하며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유연성을 낼 부분이 있는지 궁리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인택 장관의 통일부가 본연의 임무보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며 사실상 반통일부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다. 그의 기용에 대한 여야 정치권과 언론계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류우익 내정자는 그동안 대북 대화론자로 인식됐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밝히면서도 역설적으로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류 내정자가 이끌 새로운 통일부가 대화 가능성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같은 그의 대북관을 근거로 한다. 초대 대통령실장을 지내며 '왕의 남자' '왕실장' 등으로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도 대북정책 전환에 유리한 조건이다.

물론 정세가 낙관적이지 않고, 회의적인 전망도 많다. 현재의 남북 관계는 책임자 교체 정도로 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천안함ㆍ연평도 사건과 5ㆍ24 대북 제재 조치로 남북관계는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다. 천안함ㆍ연평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스스로 그렇게 족쇄를 채운만큼 양보하기도 어렵다. 또한 대화로의 급격한 방향 전환은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의 반발로 또 다른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 내정자 ⓒ연합뉴스

대화에 나서야 하는 두 가지 조건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남북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첫째, 정부는 북미대화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 정세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 문제와 비핵화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7월 22일 발리 남북 비핵화 회동을 명분으로 북미 고위급회담을 용인했다.

미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올해 1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이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명박 정부도 우여곡절 끝에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6자회담의 직접적인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난 7월 28-29일 미국 뉴욕에서 1년 7개월여 만에 북미 고위급 대화가 열린 만큼 더 이상 추가적인 북미대화를 막을 명분이 없어졌다. 북한의 '통미봉남'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공조를 통해 미국에 기대기보다 독자적으로 남북대화와 남북 비핵화 회담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내년 3월 50여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북한 관리'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공을 들이고 있는 핵안보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북한의 긴장 조성과 연평도 사건과 같은 군사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 대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일각에서는 지난 7월 22일 발리 남북 비핵화 회담이 본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라 남북이 마지못해 마주 앉은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후속 남북대화가 쉽지 않다는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발리 회담 자체가 북한은 북미협상으로 나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남쪽과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필요했고 한국 역시 미국의 남북대화 압력에 못 이겨 북한과 사진을 찍은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이뤄질 외부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달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남북한과 러시아연결하는 가스관 건설을 포함한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간의 접촉과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건의하고, "11월에 좋은 뉴스가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여권 내의 기류를 보여준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한국 수출을 위한 가스관이 북한을 통과하는 것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시 국제적 논의틀 안에서 남북대화가 가능해 정치적 부담이 덜한 사안이다.

7일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향후 대북대화 추진 방향, 그리고 비핵화 사전조치 등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공조방안에 대해 협의에 나선 것도 정부의 정책방향을 시사한다. 후속 북미대화, 6자회담 재개가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에서 남북대화를 마냥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대화를 이끌어갈 통일부의 사령탑으로 류우익 전 대사가 내정되면서 대북정책에 여러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류우익의 기용은 우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라인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강경정책을 이끌었던 현인택(대통령 통일특보)-김태효(대외전략비서관)의 발언권이 줄어들고 임태희(대통령실장)-류우익(통일부 장관) 라인이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년간의 발언과 행보를 볼 때 임태희-류우익 라인은 남북 정상회담에 적극적 입장이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2009년 싱가포르 비밀접촉의 당사자이고, 류 내정자는 지난해 1월 주중 대사에 취임한 후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 고위 당국자간 회담과 실무자 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주중대사로서 할 몫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난 5월 9일 남북접촉 파탄과 6월 1일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로 임기 후반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사실상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남북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

북한은 지난해와 올해 3차례 북중 정상회담,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교류와 경제협력보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당면한 정치ㆍ경제적 현안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1차적으로 남북 장관급 회담 복원에 나설 것

류우익 내정자도 이를 고려해 정상회담보다는 남북 장관급 회담 복원에 1차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6월에 류 내정자가 북측과 접촉해 당국간 대화 재개에 합의했다는 전언까지 나왔다.

대북 소식통들은 지난 6월 1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대답 형식으로 남북간 비밀접촉을 폭로한 것은 이른바 '김부자 표적지' 사건이 발화점이 됐으며, 이같은 남북 대치 상황이 일촉즉발에 이르렀을 6월 남측 고위 인사가 방북해 북측 고위 인사를 만난 것으로 보고 있다. 류 내정자는 부인했지만 대북 소식통들은 이 남측 고위 인사가 류 내정자인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백골부대 구호'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지난 6월 29일 이례적으로 청와대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그에(표적지 사건에) 대해 남측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으며 '관할 부대에 해당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우리(북)측에 사실상 사죄의 뜻을 표시해왔다"고 명기한 것으로 유추해 볼 때 6월 남북 접촉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조평통의 통지문을 표적지 문제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해놓고 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북측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류 내정자는 6월 접촉에서 남북대화 재개의 최대 걸림돌인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해법에도 일부 진전을 이뤘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말 올해 초 남북은 비밀접촉에서 '지난날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상호 노력하며,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가족과 희생자들에게 애도와 유감을 표명한다'는 선에서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을 매듭짓기로 합의한 바 있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류 내정자는 지난해 4월 "잊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한은 천안함이지만, 그 때문에 더욱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고, 통일부 장관 내정 직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즉답을 피해 이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류 내정자 또는 다른 고위인사가 6월 접촉에서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해법에 합의했다고 해도 외교안보 라인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2009년부터 이뤄진 남북 비밀접촉에서 합의된 사안이 번번이 대북 강경라인에 막혀 뒤집힌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측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남측도 서해상으로 넘어온 북측 어민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돌려보내고, 조계종 총무원장의 방북 승인 등 5.24 조치 이후 중단된 민간 교류를 다시 허용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남북간 물밑 조율의 효과일 수도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류 내정자는 북측과 일정한 조율을 거친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유연한' 해법과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라는 두 가지 카드를 들고 통일부 장관에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류 내정자가 지난 3년 6개월 동안의 갈등과 대결, 비밀접촉의 결렬 등 구조화된 불신을 극복하고, 남북관계는 남과 북 스스로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진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비관적 전망을 넘어 남북대화 복원에 성공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금강산 문제를 다루는 당국간 대화와 2차 남북 비핵화 회담을 북측에 제안했으나 아직까지 북한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북한이 류 내정자의 공식 취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오히려 류 내정자가 넘어야 할 큰 산은 북한이 아니라 정부 내의 대북정책 조율과 일관된 추진 의지일지도 모른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 출처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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