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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권붕괴를 부르는 미국 신용등급 하락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8.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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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패닉’”, “서울 쇼크”, “글로벌 증시 블랙먼데이”......

2011년 8월 9일 화요일 아침 신문 1면 머리기사의 제목들이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지난 주말 최고등급에서 한 단계 떨어졌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의 일인 만큼 세계경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도 그만큼 뜨겁다.

미국 국가 신용등급 ‘AAA' → ‘AA+’로 강등

국가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의 신용등급이 낮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많이 내거나 담보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운이 나쁘면 돈을 빌리지 못할 수도 있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 신용등급이 높으면 정부가 빚을 낼 때, 즉 채권을 발행할 때 이자가 낮고 돈도 쉽게 빌릴 수 있다. 반면 국가 신용등급이 낮으면 채권을 발행할 때 이자를 높게 책정되고 최악의 경우 채권을 발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은 대외 경제적인 신용이 좋지 못하여 80년대 초반까지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도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하여 벌어진 일이다.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올라간다는 의미이며, 이럴 경우 미국 정부가 채권 보유자들에게 이자를 더욱 많이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항상 스스로를 자본주의 패권국이라 자랑해왔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미국이 망하려면 전 세계 자본주의가 망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미국 정부 채권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채권 중 하나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었다는 사실은 세계 경제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F학점 수준의 미국 신용등급

경제적인 상황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신용등급은 이미 오래전에 강등되었어야 했다. 미국의 국가채무가 계속 악화되더니 올해 들어 GDP 대비 100%를 뛰어넘었으며, 재정 적자는 2010년 말 1583조 420억 달러, GDP 대비 10.8%로 국가재정위기가 거론되는 그리스나 스페인보다 더 높다.

미국의 재정상황을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기 위하여 유럽연합의 재정건전화 가이드라인을 잠시 살펴보자. EU는 27개 가입국가에 대하여 재정건전화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미만,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미만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과 비교해 본다면, 미국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이 된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무역적자도 매년 6천억 ~ 7천억 달러에 달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표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신용등급이 이제껏 ‘AAA’, 최고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세계 군사, 경제적 패권을 유지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 거래에서 돈이 부족하면 달러를 빌려와야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면 그만이다. 이런 특권 덕에 미국은 이미 국가 부도 사태를 몇 번이나 무사히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주요경제단위의 신용을 평가하는 주요 신용평가사가 모두 미국 기업이라는 점도 미국이 신용등급을 부풀리는데 한 몫 거들고 있다.

겉으로 최상의 ‘AAA’등급으로 포장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따지고 보면 'F'학점 수준이며 ‘투자 부적격’ 등급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유일 강대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위로 인하여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필연적 결과이다. 미국의 경제적 여건, 특히 재정상황이 유지 불가능한 지 오래며, 미국의 주요 신용평가사를 향한 비판적 여론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제야 강등된 것일 뿐이다.

급박한 정치 협상,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재정위기

지난 8월 1일, 눈앞에 닥친 국가부도 위기에 빠져 오바마 행정부와 야당인 공화당 사이에 정치협상이 다급히 진행되었다. 달러를 가진 미국은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놓았다. 국가부채가 법적 상한선을 넘기는 순간 미국 정부는 부도가 나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연방정부의 부채가 계속 늘어나 상한선인 14조 3000억 달러의 턱밑까지 차오르자, 오바마 행정부는 세금 증액 계획을 밝히는 동시에 연방의회에 정부의 부채상한선을 높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당은 세금의 증액은 반대하며 정부의 재정지출, 특히 사회복지 지출을 근본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바마 행정부를 정면으로 압박하였다.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사이의 정치협상은 협상시한 마감시한인 8월 2일을 겨우 몇 시간 앞두고 가까스로 타결되었다.

이번 채무협상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정부 부채 상한선을 당장 9000억 달러 증액하고 연말까지 최소 1조2000억 달러를 추가로 증액키로 하였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여 정부 채무 안정을 위해 세금 증액 없이 향후 10년간 3조 달러의 지출을 감축하기로 하고, 당장 올해 재정지출을 총 9000억 달러 삭감하며 연말에 1조 5000억 달러 추가 지출 삭감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가까스로 타결된 부채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미국 국민과 전 세계의 시선은 오히려 차갑기만 하다. S&P가 미국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에 참가하고 있는 주요 세력들은 이번 부채 한도의 증액 규모가 미국 재정 상황을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방정부가 재정지출 삭감계획을 과연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미국 재정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부자 감세 정책과 전쟁에 있다. 미국은 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스타워즈 계획’ 등의 군비 확장을 가속화했다. 부자감세가 꾸준하게 시행되어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데 군비지출과 각종 사회복지지출은 더욱 늘어났으므로, 재정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자가 늘고 기업이 망해 세금 수입은 더욱 줄어들었고 사회복지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은 중동 등에서 전쟁도 더욱 확장하여 군비지출도 계속 증가하였던 것이다. 경제위기를 해소하려면 세계 패권을 강화하고 전쟁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가 오히려 자기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암울한 미국 경제 전망

미국의 경제적 상황이 구조적으로 악화된 것인 만큼 앞으로의 미국 경제 전망 역시 암울하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경기부양정책으로 잠시 회복되는 듯 보였던 미국의 경기는 이미 2010년 4분기부터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다(그림 2).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가경제가 침체되었을 때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1)재정 지출을 늘려서 투자와 고용, 소비가 늘어나게 하는 방법과, 2)은행 금리를 낮춰서 대출을 쉽게 하여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2008년에 경제위기가 불거졌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취한 방법이다. 특히 미국은 부실기업을 정리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동시에, 기준 금리를 0%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정부 재정적자가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사업을 더욱 확대해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경제는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확정 발표된 2011년 1분기 성장률은 당초 미국 정부의 예상수치였던 1.9% 성장에 크게 못 미치는 0.4% 성장으로 보고되었고, 2분기 성장률도 증권사 예상 1.8%에 못 미치는 1.3%에 불과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6월 제조업 생산은 5월에 비해 0.4% 감소하였고, 6월 소매품 판매도 5월에 비해 0.5% 감소하였다. 또한 높은 실업과 고용 불안으로 7월 소비자 신뢰지수가 6월 76에서 66.5로 급락하였다. 이와 함께 2008년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미국 주택 경기는 계속 강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가 발표한 7월 체감경기 지수가 6월보다 2단계 하락한 14를 기록한 것이다. 이 지수가 14라는 것은 주택건설 업계 100명 중 불과 14명만이 향후 주택경기를 낙관하고 있다는 뜻이며,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작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발표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의 저스틴 울퍼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낮은 경제 성장률을 지목하며 "더블딥(경기가 다시 침체됨) 우려가 다시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경제 성장률이 최소 3%는 넘어야 고용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데 미국 경제가 다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힘들어 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국민들의 소비로 움직이는 경제이므로, 고용상황이 악화되면 이는 즉시 소비 악화로 직결되어 미국경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실제로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금융규제 강화와 경기 부진으로 고전하며 HSBC가 3만 명, 크레디 스위스가 2000명, UBS가 5000명, 인위적 감원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골드만삭스도 1000명 등 곳곳에서 대규모 감원을 확정했다. 금융권 뿐 만이 아니다. 기술장비 구입이 줄어들며 네트워킹 장비 업체 시스코 시스템즈도 6500명의 직원을 줄이기로 했고, 군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도 6500명의 감원 계획을 밝혔다. 경기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정부가 예산 지출을 오히려 줄여야 하다 보니 정부 지원 예산을 받아 사업을 벌여왔던 기업에서부터 전 산업분야로 노동력 구조조정이 점차 확산 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의 실업률은 9% ~ 10% 사이에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제국주의 체제의 총체적 위기

2008년의 경제위기는 무분별한 미국 부동산 대출로 인해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한 은행들이 부실화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재정이 파탄 났으며, 정책적으로 미국 행정부가 더 이상 사용할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2008년의 위기와 그 성격을 달리한다. 결국 금리는 더 이상 0%에서 내려갈 곳이 없고, 더 이상 재정지출을 늘릴 수도 없는 것이 지금 위기의 핵심이다. 특히 국가 재정위기가 미국 뿐 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점이 지금의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탈출 방법은 ‘달러 찍어내기’와 극도의 ‘긴축 재정’ 정책이다.

한국이 부도위기에 처해서 ‘원화’를 무한정 찍어내어 빚을 갚겠다고 한다면 이를 받아줄 나라는 없다. ‘원화’는 국제 통화도 아니며 한국의 경제 신용도가 절대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루 쓰이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제일 높았던 것이다. 이미 미국은 이러한 특별 지위를 활용하여 2008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달러’를 막대하게 찍어낸 바 있다.

미국의 ‘달러 찍어내기’ 정책의 결과로 세계 물가는 계속 올랐다. 생산이 정체된 가운데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면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른다. 돈이 흔해지는 만큼, 한정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가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구매에 이용되기 때문에 모든 산업에서 생산비용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들이 짊어지게 된다. 물가 상승률만큼 임금이 인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달러 찍어내기’ 정책은 세계적으로 민중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다. 이와 더불어 세계 각국의 긴축 재정 정책으로 사회복지예산이 줄어들어 사회적 취약 계층의 고통은 가중된다. 영국 런던을 비롯한 각지에서 벌어진 ‘폭동’, 그리고 중동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투쟁은 이러한 경제적 고통을 정치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몸부림이다.

‘달러’가 무한정 늘어나면 자기 가치를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결국 ‘군대’와 ‘달러’를 기초로 유지되었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은, 멈출 수 없는 전쟁과 최악의 국가 재정 위기로 더욱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려 한다. 지금의 위기는 제국주의의 위기 바로 그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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