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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투쟁의 제한성과 교훈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8. 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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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권에 파열구를 낸 중동정국

올해 초부터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던 중동투쟁은 미국의 중동패권에 일대 파열구를 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광범위한 대중투쟁에 직면한 중동 친미정권들의 입지가 약화되고 중동민중들의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커진 것은 향후 미국이 중동패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나 미국이 중동에서 펼친 군사작전은 하나같이 신통찮은 한계를 드러내면서 친미세력에게는 걱정거리를, 반미자주세력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미래의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지난 3월 19일,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을 앞세워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단행하였다. “오디세이 새벽”이란 이름으로 단행된 리비아 공습은 그 거창한 이름과 달리 졸속적으로 이뤄졌다. <동북아의 문>이 발표한 “무기력한 오디세이 새벽, 무너지는 현대 제국주의”에 의하면 “3월 21일의 미국 공습양상을 보면 토마호크 미사일 124발에 B-2 스텔스 폭격기가 19대 동원되는 수준이었다. 대 이라크 작전인 ‘사막의 폭풍작전’ 경우 항공모함 8척과 1820여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3000대의 탱크가 동원된 것에 비한다면 매우 협소한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시작부터 지상군 투입을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하였는데 이는 미군이 상당히 수세적 입장에서 군사작전에 임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 부채위기에 빠진 미국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결행할 돈도, 능력도 없다.

그 결과,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미국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력을 강화하며 지금까지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다. 미국이 개입하면 중동정권은 자리를 내놓는다는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전통적인 반미국가인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무장봉기도 결과는 신통치 않다. 시리아 국영 TV는 “북부 지역인 지스르 알수구르에서 테러 상황에 몰린 주민들의 도움 요청을 받고 출동 군과 경찰이 무장 괴한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120명이 숨졌다.”면서 “화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괴한들은 주택에 매복해 공격하고 우체국을 폭파해 인명피해를 냈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시리아 정부군은 6월 12일 오전 탱크 및 차량 200여 대와 함께 병력 수천 명을 알수구르 안으로 투입시켰다. 공격용 헬기가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군을 지원했으며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미국은 시리아 사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선언하면서 미군을 투입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흐지부지된 미군의 군사개입은 시리아에서 미군투입을 결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곧 총체적으로 중동민중들 속에서 미국군사력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결과로 귀결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중동투쟁은 미국의 대외경제정책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경제패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에서 단행된 대중투쟁의 기본원인은 높은 실업률과 급격한 물가상승률 등 악화일로에 놓인 경제문제에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미국이 달러를 대거 방출한 결과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정작 원인제공자인 미국은 경제가 살아나기는 커녕 부채가 늘어나 부채 상한을 재조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추락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연이어 달러를 방출하고 싶겠지만 중동에서 촉발된 대규모 대중투쟁은 미국의 달러방출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미국은 가만히 있자니 미국경제가 붕괴몰락할 것 같고, 미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러를 방출하자니 물가상승으로 제3세계 민중이 투쟁에 나설 것이 우려되는 외통수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올 상반기 중동투쟁의 첫 번째 교훈은 미국의 패권약화이다.

노동투쟁과 대중투쟁의 결합

이번 중동투쟁과정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바로 노동투쟁과 대중투쟁이 하나로 결합되었다는 데에 있다. 

원래 광범위한 반정부 대중투쟁은 독재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잠식하지만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대중시위가 그 자체로 독재정권을 끌어내릴 수는 없다. 대중투쟁이 독재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대중투쟁 자체가 무장투쟁으로 상승하면서 무력에 의해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바스티유 감옥으로 진출한 프랑스 민중들을 통해 볼 수 있으며 한국의 4.19 혁명도 청년들이 경무대 (당시 청와대)로 진격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대중투쟁은 독재정권의 정치도덕적 입지를 제거하는 결과를 낳지만 독재정권을 끌어내릴 수 없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투쟁이 벌어졌을 당시 백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결과가 있었을 뿐 미국과 이명박 정권은 끝내 쇠고기 재협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재정권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는 투쟁으로는 노동대중의 총파업투쟁이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생산설비의 가동을 중단하는 파업투쟁에 들어갈 경우 자본가 세력의 손실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국가비상사태”가 된다. 이 경우 자본가 세력과 밀접한 연계를 갖는 독재정권은 파업투쟁을 느긋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규모의 대중투쟁과 노동계의 파업투쟁이 결부될 경우, 사회적으로 질적인 변화발전이 수반되어 왔다. 87년 6월항쟁도 연이어 발생한 “87년 노동자대투쟁”에 힘입어 한국대중들의 생활양식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되었다. 

대중투쟁이 촉발되면 독재정권은 투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사회적 관심도가 떨어지는 “적절한” 시기에 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노동계의 총파업투쟁이 촉발되면 집권세력은 관영언론, 매체들을 총동원하여 노동투쟁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철저히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중동투쟁 과정에서는 대규모 대중투쟁과 노동투쟁이 동시에 일어나 중동 독재정권들을 오갈 데 없는 길로 몰아세웠다. 

올해 초 이집트 투쟁과정에서도 2월 9일, 이집트 노동자들이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항쟁세력의 압도적 우세를 보장하였다.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는 기업 소속의 노동자 3천여명이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야 등에서 급여 인상과 근무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시작, 미국과 무바라크 정권 측을 아연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지중해 쪽 항구인 사이드 항의 노동자들도 2월 9일부터 파업에 동참할 예정이었다. 튀니지의 경우도 1월 14일, 노조 총파업이 단행되며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었다.

결국 강력한 노동투쟁과 광범위한 대중투쟁이 결합됨으로 튀니지, 이집트 등의 친미정권이 거꾸러졌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가 반미자주화로 지향되지 못하는 한계

다만 중동투쟁은 그 원인제공자가 미국에 있지만 미국을 향한 반미자주화투쟁으로 확고히 지향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이 넘도록 권좌를 지킬 수 있은 것은 미국이라는 후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집트의 밀가루 가격이 서민들이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폭등한 것도 미국이 달러를 방출해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대중투쟁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주장하는데 그치고 사태의 원인으로 되는 미국을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한국의 4.19 혁명과 유사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더라도 제2의 친미세력이 재집권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사우디와 바레인 등 대중투쟁이 봉쇄된 국가에서도 투쟁양상은 동일하다. 석유이권을 나눠가지며 장기통치하는 왕정의 뒤를 봐주는 미국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지 못한 결과 중동의 모든 반정부투쟁은 하나의 단일한 운동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같은 반미성향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무장교전은 반미투쟁 보다 미국을 반대하는 정권들을 “인권유린”을 내세워 고립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동에서 반미자주화 투쟁이 촉발되고 반미자주세력에 의해 중동질서가 재편되지 않는 이상 중동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사회체제변화를 일궈내지 못함

그러다보니 중동의 투쟁은 여러 나라에 걸쳐, 수개월간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체제를 민중의 지향에 맞게 바꿔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의 경우 장기집권한 친미통치자를 끌어내리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미국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는 조건에서 그러한 친미통치지가 발붙일 수 없는 정치풍토를 만드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 바레인, 요르단의 경우 대중투쟁이 시작되고 있지만 낙후한 봉건 “왕정”을 몰아내지 못하고 여전히 국왕이 실질적 통치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왕정을 대체할, 보다 진보적인 사회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오늘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의회민주주의도 주장되지 못한 것은 중동지역의 투쟁이 앞으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건은 민중의 자각

중동투쟁은 이런 저런 성과와 한계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중동이 테러와 폭동이 난무하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동민중들의 자각이 관건적이다. 

중동의 문제는 그들이 못 나서도 아니고 부족간의 모순 때문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그 지정학적 중요성과 석유자원을 탐내고 들어온 미국의 이간질과 패권주의 정책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향과 행복도 석유자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체제를 구축하는 데에서 나온다. 비정상적인 친미 “왕정”이 온존하고 미국의 입김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다가도 쫓겨나는 이라크, 아프간 등 미국의 식민지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민중들은 더욱 강력히 반미자주적 의식으로 뭉쳐야 한다. 

가진 것은 총과 돈 밖에 없다는 미국이 돈주머니도 떨어지고 핵패권의 다극화로 그 군사력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이제 확연해졌다. 

중동민중들이 껍데기만 요란할 뿐 알맹이가 없는 미국의 바지가랭이를 벗어나 중동민중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 번영의 지름길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동발전의 지름길이요 열쇠이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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