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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병 꼭지’ 보고 놀란 미국의 태도변화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8. 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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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5일 (월) 09:46:5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의 핵무기 개발사를 다시 써야 한다

1990년 당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크루츠코브(Vladimir Kryuchkov)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비밀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문서번호는 363-K로 적혀있었다. 크루츠코브는 소련군 현역 장성으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의장과 소련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겸하였던 최고위급 관리였다. 그는 1991년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미하일 고르바쵸브(Mikhail Gorbachev)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휴가지에서 전격 억류하고 정변을 일으킨 국가비상위원회 8인 지도부 성원이었는데, 정변이 실패하자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고 구속되었다. 그가 정변 1년 전에 제출한 비밀보고서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었다.

“정보자료에 따르면, 조선 함경북도 영변에 있는 핵연구센터에서 처음으로 핵장치(nuclear device) 개발을 완성하였다. 조선은 핵무기를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와 국제감시기구들에게 감춰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조선이 그 핵무기를 실험할 계획은 없다. 국가안보위원회는 이 정보자료를 검토하기 위한 다음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위의 보고내용은 북측이 이미 1990년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위의 보고내용에 따르면, 북측이 1990년에 개발한 핵무기는 미사일에 장착하는 소형화된 핵탄두가 아니라 아직 폭발실험을 거치지 않은 초기단계의 핵장치였다.

북측 외부에서 북측의 핵능력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사실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기에 북측의 핵개발사업을 지원한 경험이 있고, 북측은 옛 소련의 핵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핵능력을 키워왔다.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출한 북측의 핵개발에 관한 비밀보고서가 신빙성을 갖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소련의 공식 평가에 따르면, 북측은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10월 9일에 핵보유국이 된 것이 아니라, 1990년에 핵보유국이 된 것이다. 북측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으니, 지난 21년 동안 북측은 핵장치를 정밀화, 소형화하여 핵탄두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다탄두 기술까지 개발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진실을 감추고 과소평가해놓은 북측의 핵무기 개발사는 다시 써야 한다.

북측의 핵무기 개발사를 다시 쓰게 만든 또 다른 정보가 있다. 2007년 1월 29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 마샬 연구원(George C. Marshall Institute)에서 미국 국방부 산하기관인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의 패트릭 오레일리(Patrick O'Reilly) 당시 국장(현역 육군 중장)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능력에 관한 기조연설을 하였다. 각종 도표까지 준비한 연설에서 그는 북측이 이전의 미사일 체계와 달리 “질적으로 개선된 성능(qualitative improvement in performance)”을 지닌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미국 국방부가 사상 처음으로 북측 미사일 능력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오레일리 국장은 연설에서 “질적으로 개선된 성능을 지닌 신형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였으므로, 그의 설명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말 속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는 그로부터 3년 10개월이 지난 2010년 10월 10일에 밝혀졌다. 그 날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바로 그 미사일이 등장하여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행진에는 세 종류의 첨단미사일이 등장하였는데, 행진순서를 보면 4축8륜 발사차량에 실린 단거리 미사일, 5축10륜 발사차량에 실린 중거리 미사일,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린 중거리 미사일 순으로 행진하였다. 2007년 1월 29일 미국 미사일방어국 국장이 언급한 “질적으로 개선된 신형 중거리 미사일”은 두 번째로 등장한 5축10륜 발사차량에 실린 바로 그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이 첫 번째로 등장한 4축8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은 전혀 다르게 생긴 탄두부 외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등장한 4축8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 탄두부는 고깔모자처럼 생겼는데, 두 번째로 등장한 5축10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 탄두부는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다. 세 번째로 등장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 탄두부도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으나, 5축10륜 발사차랑에 실린 미사일 탄두부보다 더 뭉툭하고 크기가 더 커 보인다. 이 뭉툭하고 큰 탄두부에는 다탄두가 실린다.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탄두부를 3중 원뿔형 비행탄두 외형(triconic aeroshell geometry)이라 하는데,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두부가 그렇게 생겼다. 백악관은 바로 그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탄두부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첫째,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탄두부에는 탄도비행궤도을 비행 전 과정 중에 정밀 수정하는 첨단항법장치가 들어간다. 이것은 북측이 미사일의 타격 정밀도를 결정적으로 높였음을 뜻한다. 인민군 열병행진에 두 번째로 등장한 5축10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의 원형공산오차(CEP)는 30m 안팎이다. 이것은 탄두가 타격목표 반경 30m 안에 떨어지는 정밀타격력이다.

둘째,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탄두부는 탄두무게를 1,000kg에서 700kg으로 줄일 수 있다. 탄두무게를 줄인다는 말은 사거리를 훨씬 더 늘인다는 뜻이다. 인민군 열병행진에 두 번째로 등장한 5축10륜 발사차량에 실린 미사일의 사거리는 탄두무게를 700kg로 줄일 경우 3,500km로 늘어난다.

셋째,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탄두는 미국군이 설치해놓은 미사일방어체계(MD)를 뚫을 수 있다. 원산에서 괌(Guam)까지 거리가 3,347km이므로, 만일 인민군이 원산 부근에서 그 첨단미사일을 쏘면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고 들어가 괌에 있는 미국군 전략거점들을 날려버릴 수 있다.

넷째, 탄두부를 우유병 꼭지처럼 만든 것은 미사일 탄두를 재돌입체(re-entry vehicle)로 제작하였음을 뜻한다. 재돌입체를 생산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군사강국은 전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다. 이란이나 파키스탄도 재돌입체를 생산하지만, 그 나라들은 원천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북측의 기술을 수입한 것이다.

다섯째, 고깔모자처럼 생긴 원뿔형 탄두부에는 자탄 1,400개가 들어있는 집속탄두가 장착되지만,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재돌입체 탄두에는 포신형(gun-type) 우라늄 핵탄두가 장착된다. 우유병 꼭지처럼 생긴 재돌입체 탄두에 포신형 우라늄 핵탄두가 장착되므로, 북측이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행진에서 그런 모양의 탄두부를 가진 첨단미사일을 공개한 것은 이미 우라늄 핵탄두를 보유하였음을 과시한 것은 아닐까? ‘우유병 꼭지’를 보고 놀란 백악관은 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와 국방부의 이상한 행동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측의 핵능력과 미사일능력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북측이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에 맞서 치열한 정면대결을 벌여오면서 전술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에게 그처럼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기에, 군사력의 안받침을 받은 외교력을 발휘하여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미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완강하게 버텨오던 대북정책을 포기하고 북미 고위급회담에 끌려나왔다. 북측은 앞으로 몇 차례 더 진행될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오랜 숙원인 평화협정 체결의제를 관철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해주는 몇 가지 정보는 아래와 같다.

2011년 8월 5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에 관한 보고회가 진행되었다. 오전에는 연방상원에서, 오후에는 연방하원에서 진행된 보고회에는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소속 로벗 킹(Robert R. King) 대북인권특사와 코리아 담당 과장이 나가 연방의원들에게 최근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회담에 관해 설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 행정부가 연방의회에게 어떤 현안에 관한 정보를 전하는 보고회는 대체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날 북미 고위급회담에 관한 보고회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더 이상한 것은, 비공개보고회(closed debriefing)보다 보안 수준이 높은 비밀보고회(classified debriefing)로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비밀보고회에는 국가기밀 취급인가를 받은 연방의회 전문위원들만 참석할 수 있으므로, 보고회 참석자는 극소수로 제한되었다. 연방의회에서 진행되는 비밀보고회는 고급 군사기밀 또는 국가안보에 관한 고급정보에 관해 설명하는 자리인데, 북미 고위급회담에 관해 설명하는 보고회를 최고 수준의 정보보안을 요구하는 비밀보고회로 진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그처럼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문제에 직결된 매우 중대한 의제가 다루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미관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중대현안들이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2011년 8월 8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 웹사이트는 연방상원이 성김 주한미국대사 지명자에 대한 인준을 보류하였다고 보도하면서, 보류된 까닭은 공화당 소속 연방상원이 인준보류를 요청하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주한미국대사 지명자에 대한 인준문제만이 아니라, 웬디 셔먼(Wendy R. Sherman) 국무부 정무차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문제도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보류상태에 묶어두었다. 연방상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할 지명자들에 대한 인준이 보류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한반도 문제를 담당할 지명자들의 인준을 보류한 까닭은, 북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오바마 정부의 최근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 그 상원의원들에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원의원들의 제동현상은 오바마 정부가 북미관계 개선을 급진전시킬 수 있음을 반증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1년 8월 5일 연방의회에서 진행된 국무부의 비밀보고회에 참석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에 관한 놀라운 정보를 들었다면, 제동을 걸만도 하다.

이례적인 현상은 연방의회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에서도 나타났다. 2011년 8월 5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국방부 관리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미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사업을 재개하는 의제를 놓고 회담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8월 2일 북측에 보냈다고 밝혔다.

미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사업은 북측과 미국이 1996년부터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미국 유해발굴단이 33차례나 북측에 들어가 220여 구의 유해를 발굴하였고, 그 가운데 107구의 신원을 확인하여 유가족에게 인도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북측에 머물던 미국 유해발굴단 성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구실을 내걸고 2005년 5월 25일 유해발굴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였고, 그 날 이후 유해발굴사업은 무려 6년 동안이나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6년 동안 중단되었던 미국군 유해발굴을 재개하는 문제는 2011년 7월 28일과 29일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미국에 제안한 것인데, 미국 국방부는 그 제안을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흘만에 즉각 응답서한을 보낸 것이다. 그 응답서한에서 미국 국방부는 북미 양자회담을 열고 미국군 유해발굴 재개문제를 협의해야 하므로 북측 대표를 미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 국방부의 이러한 전격적인 태도변화와 관련하여 아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워싱턴에서 대북협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쪽은 국무부였고, 미국 국방부는 대북협상을 사실상 외면하거나 반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국방부가 북측 인민무력부의 협상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고 인민무력부 고위급 인사를 워싱턴으로 초청한 것이다. 미국 국방부로서는 실로 엄청난 태도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태도변화는 워싱턴에서 북미관계를 개선할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둘째, 미국 국방부가 1996년부터 10년 동안 지속된 미국군 유해발굴사업을 2005년 5월 25일에 돌연 중단한 까닭은 역시 ‘핵문제’에 대한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2005년 2월 10일 북측은 핵무기를 보유하였고 앞으로 더 제조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그런 선언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큰 충격을 받고 반발한 쪽은 미국 군부였다. 이처럼 북측의 ‘핵문제’에 반발하여 미국군 유해발굴을 중단하였던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미국군 유해발굴을 재개하려는 것은, 그들이 북측의 ‘핵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셋째, 원래 북측은 2010년 1월에 미국군 유해발굴을 재개하는 문제를 논의하자는 제안을 미국에게 보낸 바 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백악관이 결정한 ‘전략적 인내’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시기를 더 거슬러올라가면, 2007년 4월 8일부터 11일까지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와 앤서니 프린시피(Anthony J. Principi) 전직 보훈처 장관을 공동단장으로 하고, 빅터 차(Victor Cha)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국장이 참가한 대표단이 방북하여 미국군 유해를 전달받았다.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북대표단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시아 담당 국장을 포함시킨 것은, 북측과 ‘핵문제’에 관한 비공식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핵문제’에 관한 협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2007년 4월 미국 대표단의 방북이나 2010년 1월 북측의 제안이나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미국 국방부가 북측 인민무력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인민무력부 고위급 인사를 워싱턴으로 초청하였다.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문제’에 관한 대북협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자기 태도를 바꾸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미 국방장관 회담은 열릴 것인가?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미국군 유해발굴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미국에게 보낸 때가 원래 2011년 1월 25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날짜로 작성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당시 국방장관에게 보낸 서한에 미국군 유해발굴을 재개하자는 제안이 들어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그 서한에서 미국군 유해발굴 재개문제만이 아니라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문제와 비핵화를 실현하는 문제도 의제에 포함시켰고, 그 중요한 의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북미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하였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의 서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미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미국 국방장관에게 제안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의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2010년 12월 16일부터 23일까지 방북한 빌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미국에게 전달한 북측의 제안에 그 의제가 들어있었다. 그 의제는 북측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를 허용하는 것, 그리고 국제시세로 1,400만 달러에 이르는 미사용 핵연료봉(fresh fuel rod) 12,000개를 해외에 판매하는 것이다.

또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미국 국방장관에게 제안한,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의제는 남, 북, 미 3자가 참여하는 서해 분쟁수역 감시 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 제안도 역시 2010년 12월 방북한 빌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미국에 전달된 바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1년 1월 25일자로 작성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의 서한을 접수한 곳은 주중미국대사관이었고, 주중미국대사관은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던 로벗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에게 그 서한을 직접 전달하였다는 점이다. 로벗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은 베이징에서 그 서한을 받아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물음에 관해서는, 제프 모렐(Geoff Morrell)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2011년 1월 26일 워싱턴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전한 중대한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렐 대변인은 당시 베이징에 머물고 있던 게이츠 국방장관이 “북측이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지적하면서, 그 말은 “북측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생각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5년보다 이른 시점에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북미 국방장관 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의 서한을 받은 미국 국방장관은 왜 “북측이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말을 불쑥 꺼냈을까? 직접적인 협상을 제안받은 사람이 제안상대에게서 직접적인 위협을 느꼈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반응으로 보인다. 미국 국방장관은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북측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서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북측의 협상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 8월 2일 미국 국방부가 인민무력부 고위급 인사를 워싱턴으로 초청하였으므로, 앞으로 얼마 뒤 인민무력부 고위급 인사가 미국 국방부를 방문하여 군사부문에서도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릴 것이다. 북미관계 개선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은 올해 2011년 1월에 북측이 미국에게 제안한 북미 국방장관 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리고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중대한 정치적 변화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급진전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핵문제’에 정통한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방북한 스티븐 보즈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특사는 2009년 12월 9일 평양에서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과 고위급회담을 진행하면서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남, 북, 미, 중 4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4자 평화회담 개최와 6자회담 재개 병행추진 방침은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들어있는 내용이었으므로, 그것을 강석주-보스워즈 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2009년 12월 평양에서 진행된 강석주-보스워즈 회담에서 합의한 4자 평화회담 개최문제는 2011년 7월 뉴욕에서 진행된 김계관-보스워즈 회담에서 재확인된 것이다. 이제는 그 의제를 실행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그렇다면, 4자 평화회담 개최문제와 북미 국방장관 회담 개최문제는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이 중대한 현안에 대해서는 아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1998년 10월 9일 북측은 장차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현존하는 정전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군사협의기구로서 군사안전보장위원회를 설치하는 문제를 미국에게 제안한 바 있다. 또한 북측은 2003년 7월 23일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비망록’에서 군사협의기구 설치문제를 미국에게 제안하였음을 재확인하였고, 2008년 4월 8일 미국인 코리아문제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방북단에게 조선인민군 최고위급과 미국군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군사협의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를 또 다시 설명하였다.

지난 13년 동안 북측이 미국에게 일관되게 제안해온, 북미 군사협의기구를 설치하는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바로 북미 국방장관 회담이다. 그러므로 북미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면, 북미 군사협의기구를 설치하는 의제를 다룰 것이며, 4자 평화회담이 열리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의제를 다룰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정전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북미 군사협의기구를 설치하려는 북측의 치밀한 준비와 일관된 노력이 돋보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11년 7월 20일부터 북측은 서해에서 대규모 육해공 3군 합동훈련 준비에 돌입하였다. 서해 남포항 앞바다에서 상륙함, 공기부양정, 전투함, 화력지원함을 비롯한 군함 20여 척이 출동대기상태에 들어갔고, 강원도 원산기지에 배치된 미그-21 전투기 편대를 남포항에서 멀지 않은 평안남도 온천군에 있는 온천비행장으로 이동배치하였으며, 해상저격여단과 지상군 병력이 총집결하였다. 7월 25일 북측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평양에 있는 해군사령부를 시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북측은 서해 남포 일대의 해상과 지상에서 출동대기 중이던 대규모 육해공군 병력과 장비를 7월 28일과 29일에 걸쳐 철수하고, 병종별로 소규모 훈련만 실시하였다. 이것은 북측이 합동훈련을 사실상 취소하였음을 말해준다. 한국군 관계자는 인민군이 육해공 3군 합동훈련을 크게 축소한 까닭은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개성시와 해주시, 황해남도 평강군 일대에 집중호우가 내려 침수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지만, 그것은 오해다. 집중호우가 내린 지역과 육해공 3군 합동훈련을 실시하려던 남포 앞바다까지 거리는 약 100km나 떨어져 있으며, 남포 일대에는 그 무렵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북측이 3군 합동훈련을 갑자기 축소한 까닭은 7월 28일과 29일 뉴욕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조성된 북미관계 개선 분위기를 살리려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2011년 8월 16일부터 26일까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북미 국방장관과 4자 평화회담이 열릴 분위기가 조성된 지금에 와서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행동이다. 인민군은 한국군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훈련 통지문을 전달하려 하자 접수를 거부하였다. 접수거부는 이전에는 없었던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통지문을 전달하지 못한 한국군은 군사분계선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통지문을 읽어주는 촌극을 연출하였다.

인민군이 통지문 접수를 거부한 것은, 북측이 올해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훈련 실시여부를 보고 미국의 진의를 파악하겠다는 뜻이다. 북측이 3군 합동훈련을 사실상 취소한 것처럼, 미국도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훈련을 사실상 취소함으로써 모처럼 조성된 북미관계 개선 분위기를 살리고, 북미 국방장관 회담과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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