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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인사 방문과 연이은 군사적 충돌의 배경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4. 10. 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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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고위 인사 세 명이 등장했다.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룡해 조선로동당 비서(근로담당)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양건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등 세 명은 현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측근이자 북한 핵심 인물들로 지목받고 있으며 이번 방한이 사실상의 특사 자격으로 온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가 극적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들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규현 NCS 사무처장, 한기범 국정원 1차장 등과 오찬회담을 갖고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갖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또한 황병서 국장이 예복을 입고 온 것이나, 오찬회담장과 폐막식장에서 남북 관계자들이 문서를 돌려보았던 점을 미루어볼 때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계획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측 인사도 청와대 방문 일정을 묻는 기자에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인천아시안게임이 시작하기 전부터 남북관계 극적 전환의 계기로 보고 있었다. 대규모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응원단 방문이 무산되면서 기회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이 스스로 응원단까지 만들어서 북한 선수들을 적극 응원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자 다시 기회가 열렸다. 


정부 당국자는 부인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의 요인들이 대거 내려와서 겨우 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합의하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언급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직접 위원장이 될 정도로 남북관계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는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가 주도하고 북한을 종속시키는 왜곡된 것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본인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DMZ 평화공원을 합의해 노벨 평화상을 받겠다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북한 인사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보여야 할 태도와 과제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 사안으로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 분위기를 깼을까?


그런데 기대했던 청와대 방문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비중 있는 인사들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했기에 비록 청와대 방문은 무산됐지만 일단 박근혜 정부의 향후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폐막식이 끝나자 무섭게 서해 NLL 지역과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연이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정상회담은커녕 2차 남북고위급 접촉마저 기대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대체 누가 남북관계 발전의 획기적 기회를 가로막는 것일까?


북한의 이중적 태도라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무릇 어떤 사건의 원인을 알기 위한 가장 첫 단계는 그 사건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느냐다. 북한이 전격적인 대화제의를 하고서 곧바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가 불안하기 때문에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내부 결속을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또 다른 이들은 북한이 원래 비이성적인 정책 판단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대북전문가들은 북한의 대외정책이 매우 주도면밀하며 합리적이라고 분석한다. 비이성적 정책 판단으로는 수십 년의 북미 대결에서 북한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려 한 것일까? 물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기본적으로 적대강경정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활용해 자신의 치적을 쌓고 내부 정치위기를 벗어날 고민을 하고 있다면 굳이 나서서 극적인 대화 계기를 스스로 망칠 이유는 없다. 



북한의 고위 인사들이 돌아간 직후인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남북이 대화를 통해서 평화의 문을 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주문하면서 ≪그동안 남북 관계는 접촉 후에도 분위기가 냉각이 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이 돼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이번 고위급 접촉 단발적 대화에 그치지 않고 남북대화의 정례화를 이뤄 평화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나름의 기대감을 보인 것이다. 


남북대화를 막기 위해 앞장선 세 집단


연이은 군사적 충돌은 기존에 남북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고가는 외교 충돌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군가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막기 위한 절박한 사정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를 단순히 ≪박근혜 정부는 원래 반북노선이었으니까≫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급진전을 가로막기 위한 여러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군부, 반북언론, 탈북자단체에서 나오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일 박근혜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하루만에 ≪접촉 후에도 분위기가 냉각이 되는 그런 악순환≫의 예언이 적중했다. 7일 오전 연평도 인근에서 남북 함정 간 경고사격이 있었던 것이다. 합참 관계자에 따르면 당일 오전 9시 50분 경 북한 경비정 1척이 연평도 서방 NLL을 약 900m 침범해 한국군 유도탄고속함 1척이 경고통신과 함께 76mm 함포로 경고사격을 실시했고, 북한 경비정이 대응사격을 해 한국군도 맞대응을 했다고 한다. 서로 경고사격만 한 것이기에 실제 피해는 없었지만 남북 상호 사격은 2009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NLL은 항상 논란이 되어 왔고 북한 경비정이나 어선도 종종 NLL을 넘어오지만 그 때마다 교전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과도한 대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누군가가 군부일까?


같은 날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북한이 2015년을 통일대전 완성의 해로 선포했다고 보고했다. 출처 불분명의 정보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에 논란이 된 최전방 대북전단 살포도 군부의 협조 혹은 묵인이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북한 응원단 방문이 무산된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도 국방부가 교육자료를 통해 북한 응원단을 <대남선전의 선봉대>로 규정하고 응원단 방문이 <대남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반북언론도 문제다. 지난 8일 반북언론들은 일제히 <북한 남침시 미국 핵무기 사용>이란 보도를 내놨다. 지난 2011년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이 밝힌 입장을 소개한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7일(현지시간) 펴낸 패네타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따왔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확인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무슨 대단한 특종이라도 되는 양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올린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네티즌들은 뉴스 댓글을 통해 ≪남북대화가 되려니까 또 시작이다≫며 비아냥거렸다. 



탈북자단체들은 남북대화 차단의 행동대를 자처했다. 북한은 그간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군사적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보여 왔다. 이번에 북한이 고사포로 풍선을 쏜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북한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살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이 나는 한이 있어도 남북대화는 가로막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


군부, 반북언론, 탈북자단체는 모두 남북대화를 가로막아야 할 자체 요구가 있다. 더 중요한 부분은 이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강력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군부야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등을 통해 철저히 미국의 통제 아래 놓여있다. 반북언론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과거와 같은 보수정부의 대변인 역할에서 벗어나 정부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북언론들이 박근혜 정부와 선을 긋는다면 다른 누군가와 결탁했을 것인데 그것이 미국일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탈북자단체 역시 미국 국무부나 민주주의기금(NED)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으며 대북전단을 살포할 때 미국 관계자가 함께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들이 미국의 뜻에 따라 남북관계 전환을 가로막고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역시 이런 상황을 알기에 이번에 요인들의 방한도 하루 전에 갑자기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즉,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상의할 시간을 주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방해를 차단하고 박근혜 정부의 본심을 파악해보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은 아직 북미대화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미국과 공조해야 할 일본이 먼저 북한과 협상을 진행하더니 한국마저 대화에 나서면 미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1차 남북고위급 접촉이 있던 날 B-52 전략핵폭격기를 군산 앞바다에 날려보내고, 여름에 북한 응원단 관련 남북실무접촉을 앞두고 조지워싱턴 핵항공모함을 부산에 입항시킨 것도 모두 미국이다. 남북대화를 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 북한 인권문제에 열을 올리면서 새로운 차원의 대북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북한 요인들의 방북 직후인 8일(현지시간)에도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을 작성해 비공개로 회람했다. 물론 초안 작성을 주도한 것은 유럽연합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북한 인권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를 볼 때 미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이번 결의안에는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방안까지 들어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종 결의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보도가 대서특필되는 이유는 결국 북한을 자극해 대화를 가로막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이번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2차 남북고위급 접촉이 무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미국, 그리고 미국의 뜻을 따르는 군부, 반북언론, 탈북자단체들을 방치한다면 상황은 고위급 접촉 무산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남북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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