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통일이 화두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핵심과제로 한반도 통일시대 기반 구축을 꼽고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언급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해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박 대통령이 통일을 꺼내든 게 뜬금없다는 반응도 많지만 사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연말·연초에 통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남재준에 이어 조선·중앙도 ‘통일’ 언급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남 원장은 지난해 12월21일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 참석자는 이 자리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보수언론들도 연초부터 통일 분위기를 띄웠다. 조선일보는 1월1일부터 4일에 걸쳐 ‘통일이 미래다’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실었다. 북한 급변사태로 갑작스런 통일이 올 수 있으니 대비하자는 내용이었다. 중앙일보 역시 5.24조치를 풀고 남북이 대화에 나서야 유라시아 철도 등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것과 위에서 나열한 일련의 흐름이 맞물려 새해에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전쟁 위기가 극단까지 치달았다가 미국이 한 발 물러선 경험을 떠올리며 미국이 전쟁 노선을 포기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도 남북대화를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흡수통일
물론 남북관계에서, 특히 정상회담을 통해 치적을 쌓고자 하는 바람은 역대 어느 정부든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취임 전부터 북한과 물밑 접촉을 했다는 정황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는 남북관계의 상과 정상회담의 내용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크게 다르다. 박근혜 정부의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이야기하는 통일은 흡수통일이며, 통일 가능성을 북한 급변사태에서 찾고, 구체적 계획은 국정원에서 논의하고, 남북대화의 전제로 북핵 폐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어느 하나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주변 분위기도 남북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올해 상반기 전쟁 위기가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지난해 말 김관진 국방장관이 새해 1월 말~3월 초라고 시기까지 찍어서 ‘북한의 도발’을 예상했다. 새해 초에는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이 한미연합 전쟁연습을 이유로 북한이 ‘도발’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윤병세 장관도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을 만나 “북한의 최근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자 여야도 환영했는데 거기다 찬물을 끼얹고 북한을 맹비난한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분위기라면 대화를 시작하기도 어렵고, 시작해도 성과를 보기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이런 점도 모를 만큼 무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 분위기 조성에서 느껴지는 유신독재의 전조
통일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실제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모순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갑자기 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보며 유신독재의 전조를 느끼기도 한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조국통일 3대 원칙이 발표되고 온 국민이 통일의 부푼 꿈에 젖어있을 때, 박정희 정부는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1972년 10월27일 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을 통과시키며 정부는 “유신적 개혁 단행만이 국가의 안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약하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면서 이 헌법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부가 주장한 통일은 체제 경쟁을 통한 흡수통일이다. 이들은 ‘평화통일을 위해 산업화를 해야 하고, 산업화를 위해 정권에 순종해야 하며, 따라서 정부 비판 세력을 제거하고 독재를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다. 지방선거만 이기면 다음 총선까지는 마음 편하게 국민들을 ‘통치’할 수 있겠지만 만약 패한다면, 여기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 놓아야 한다. 경제가 어렵다, 통일이 살길이다, 그런데 북한은 완강하다, 정부는 국민들의 힘을 모아 북한을 굴복시키려 한다, 그런데 정부 정책을 반대하고 시위나 하면서 사회 혼란을 일으키다니, 용납할 수 없다. 유신독재와 똑같은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전쟁위기 조성하며 외치는 통일은 ‘쪽박’
하지만 국내용으로만 국한시켜 해석하기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좀 더 넓게 눈을 돌려보자.
북한의 핵능력은 갈수록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대외정책의 산실인 외교협회(CFR)는 지난 7일 보고서를 통해 2014년 미국이 가장 주의해야 할 나라로 북한을 꼽았다. 미국이 직접 상대하기에 북한은 너무 위험한 존재고, 게다가 미국 경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눈이 일본과 한국에 쏠린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군국주의화를 환영한 미국은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해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 완성을 서두른다.
그러나 한일 군사협력은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으로 결코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 말기 한일 군사협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가 지탄을 받은 끝에 철회한 경험이 있다. 부친의 친일 행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더 민감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반발이 뻔히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뭔가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통일 되면 떼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 북한의 도발을 막고 하루빨리 통일을 하려면 튼튼한 안보와 막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달갑진 않지만 일본과 군사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논리도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 속지 않고 반발하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일면 설득, 일면 탄압. 박정희 정권도 계엄령을 선포, 6.3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한일협정을 체결, 수교를 맺은 경험이 있다.
유신헌법이든, 한일동맹이든, 결국 부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박근혜 정권. 연초부터 전면전 가상 훈련이나 하면서 외치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경환 동북아의 문 대표
<진보정치 641호>
* 이 글은 통합진보당 기관지 <진보정치> 64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