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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진보당 사태 해부②] 진보당 사태는 진보답게 해결해야 한다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2. 5.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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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운명도 불투명해졌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2012년 정권교체를 갈구한 국민들의 실망감이다. 억측과 의심, 마녀사냥과 감정만 남은 통합진보당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현 사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동북아의 문>은 특별기획 <진보당 사태 해부>를 준비하였다.

① 2012년의 무게에 짓눌린 통합진보당
② 진보당 사태는 진보답게 해결해야 한다
③ 부정과 부실, 관행 사이의 진실
④ 이정희 전 대표는 무엇을 원했는가
⑤ 선 책임사퇴론 vs 선 진상조사론 무엇이 정답인가
⑥ 사태의 본질은 내부에 있나 외부에 있나
⑦ 진보대통합당 창당은 무리수였을까
⑧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진보당 사태는 진보답게 해결해야 한다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많은 이들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점은 왜 문제를 진보적으로 풀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태의 발발과 전개, 해결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은 진보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진보당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던 많은 국민들은 조준호 위원장의 <총체적 부정>이란 발표에도 실망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그 이후 진보당 내에서 드러난 행태에 대해서도 실망을 금치 못했다. 급기야 사람들 속에서 ≪진보나 보수나 똑 같다≫는 푸념까지 나오게 되었다.


진보당 사태에서 나타난 진보적이지 못한 모습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과학성, 합리성, 객관성은 어디로


첫째, 사태의 발단이 된 진상조사에서 진보의 보편적 가치인 과학성, 합리성, 객관성을 잃어버렸다.


과학성 부재는 진상조사보고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진상조사보고서는 너무나 심각하게 과학성을 잃어버려 5월 5일 있었던 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조차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근거하여≫라는 표현을 삭제할 정도였다.


또한 이후 진상조사위원들이 언론에 폭로한 내용들도 과학성을 잃어버렸다. 동일 IP 문제는 당원들이 많은 사무실에서 인터넷 투표를 하는 경우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임에도 마치 부정선거의 근거인양 제시되었다. 주민등록번호 문제도 주민등록번호 체계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만 있어도 거론할 수 없는 내용을 마치 결정적 증거를 발견한 것처럼 제시했다.


합리성 부재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원의 구성부터 비공개로 이루어졌으며, 부정선거를 저지른 대상들을 직접 조사하고 해명의 기회를 줘야 하는데 이를 무시했다. 일방의 주장만 허용한 것이다. 재판을 하더라도 검사와 변호사가 참석해야 하는데 검사의 주장만 허용한 다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표진과 비례후보 사퇴 주장에서도 불합리한 모습이 나타났다.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사례들이 있었는지 분명히 밝힌 다음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합당한 수준에서 책임질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부정선거 사례에 대해 충분한 조사와 검증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단 책임부터 져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으며, 책임질 위치에 있지도 않은 비례후보들에게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됐다.


객관성 부재는 진상조사위 구성과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데서 드러났다. 원래 진상조사를 요구한 후보는 오옥만, 윤금순, 노항래, 이영희, 나순자 후보였다. 오옥만 후보는 윤금순 후보가 받은 현장투표에 무효표가 더 있을 수 있다며 전수조사를 요구했고, 이영희 후보는 일부 현장투표가 무효표로 처리되는 바람에 노항래 후보에게 밀렸다며 현장투표 일부를 유효표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순자 후보는 자신이 조직한 당원 가운데 1500명가량이 입당 처리가 안 됐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런데 진상조사위는 위원장 1명, 실무 간부 1명, 그리고 진상조사를 요구한 후보측 5명으로 구성되었다. 부정의혹을 받은 측과 제기한 측으로 진상조사위가 구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상조사위는 이해관계가 없는 중립적인 인물들로 구성하여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제기를 한 측과 받은 측의 의견을 듣고 사실 관계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진상조사위의 구성부터 이미 객관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정작 진상조사는 이들과 무관하게 이석기 후보에 대한 집중 조사로 이루어졌다. 애초에 진상조사위를 만든 목적은 사라지고 어느새 아무 관련도 없던 후보가 부정선거를 저지른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심지어 이석기 당선자에 대해 동일 IP에서 투표된 표가 61.5%나 된다고 폭로했는데 정작 65.3%를 동일 IP에서 득표한 당선자도 있었다. 다른 후보들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정치검찰이 즐기는 표적수사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처럼 진보당 사태의 발단이 된 비례후보 경선 진상조사는 과학성과 합리성,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 밖에 조준호 위원장이 경선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열어본 후 특정 후보 득표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폭로했으나 정작 데이터를 보면 정반대로 득표율이 감소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과학성, 합리성, 객관성을 잃어버리다 보니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정도를 넘어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만장일치 합의제라는 통합정신은 어디에


둘째, 사태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진보적 조직운영원리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진보적 조직운영원리의 기본은 민주주의다. 진보당은 당헌 전문에도 ≪통합진보당은 당원 주체의 당내 민주주의를 엄격히 적용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민주적 조직운영에는 당원들의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과 함께, 당의 의사결정기구의 결정 아래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도 포함된다. 의사결정기구 판단 없이, 혹은 판단을 거부하고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당 내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지럽히는 방종(放縱)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통합 과정에서 공동대표단의 만장일치 합의제를 채택했다. 어느 한 세력도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진상조사가 끝났으면 당연히 공동대표단에게 보고하고 결론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공동대표단의 합의 없이 진상조사위원장이 직권으로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였다. 게다가 언론 발표 시점에 진상조사보고서는 완성되지도 않았다. 공동대표단이 보고서를 받아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에도 진상조사위원장과 위원들은 당 내부 문제를 당 내에 먼저 보고, 협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언론에 먼저 폭로하는 식으로 행동했다. 폭로 내용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진보당은 언론의 부당한 공격을 받게 되었고 당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또한 5월 12일 중앙위원회 역시 민주적 운영원리를 포기한 채 진행되었다. 만장일치 합의제라는 통합정신은 애초에 실현될 수 없었다. 공동대표단에서 합의되지 않은 안건이 중앙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의되지 않은 안건을 빼고 회의를 진행하든지, 사전에 표결로 처리하기로 합의를 하든지 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 중앙위원들이 반대 의사를 외치고 있는데 심상정 의장은 만장일치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국회에서 흔히 구경하던 날치기 통과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회의를 참관하던 당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물론 반대가 분명히 있는데도 만장일치를 선언한 것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다고 해도 폭력을 사용한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해도 정당성을 얻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통합정신이 실종된 회의 운영 문제는 사라지고 폭력사태만 부각되는 새로운 상황이 조성됐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운동 전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진보당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진보적 조직운영원리가 전혀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태는 더욱 확대되고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억울함을 들어주던 진보의 원칙은 어디로


셋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진보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실관계와 진실을 철저히 파헤치지 않고 적당히 덮으면서 몇몇 희생양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보수정치의 전매특허다.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수정당들이 틈만 나면 당명을 바꾸고 당대표를 갈아치우지만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는 진실에 기초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징계하여 다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원칙적인 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진보당 사태는 시작부터 보수정당의 행태를 따라가며 일단 사퇴, 무조건 사퇴 주장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억울하겠지만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가기 위해서는 일단 사퇴를 하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왔다. 설사 책임이 없고 부당하다 하더라도 사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비난을 피하고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용적인 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진보적인 해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를테면 합동조사단의 진상보고서가 발표됐으니 북한은 억울해도 일단 천안함 침몰에 대해 사과를 해 위기를 피하고, 나중에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그 때 가서 진상을 철저히 재조사하면 된다는 것과 유사한 논리다.


여론몰이식 분위기 조성도 문제다. 진보당 내부를 <당권파>, <비 당권파>로 나누고 무슨 말만 하면 ≪당신은 당권파인가≫ 하면서 폭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마녀사냥이 횡행하고 있다.


또 진상조사위원들이 언론에 폭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키워나가는 바람에 <혐의자>들은 반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 진상조사보고서에 부정선거 사례로 언급된 당원들, 이를테면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기재된 사람들이나, 한 사무실에서 인터넷 투표를 하는 바람에 중복 IP가 된 사람들, 실무자가 없어 현장투표 관리를 부실하게 한 지역 상근자들은 자신들이 <부정선거사범>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억울해하고 있으며 진보운동가로서, 진보당 당원으로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며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 대고 하소연도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곽노현 교육감이 <부정비리> 혐의로 꼬투리를 잡혀 수구세력과 공안당국에게 어떻게 공격당했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근대 법개념의 기본 내용이며 헌법 제27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 원칙은 열 사람의 범인을 잡지 못하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정신에도 담겨 있다. 그런데 진보정당에서 이런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진보가 집권하면 근대법의 정신은 폐기하고 여론재판에 의존할 셈인가?


공동대표의 전원 사퇴와 비례후보 경쟁명부 전원 사퇴가 과연 지금까지 밝혀진 경선 문제에 비추어 적절한 수준인지도 의문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면 사법부에 대들었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자신의 행위에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공명정대하지 못한 사법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지금 진보당 내에서 관련자들을 징계하는 모습이 이와 유사하다. 확실한 부정선거 사례보다는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만으로 몇몇 사람들이 <부정선거사범>으로 낙인찍혀 사퇴는 물론 제명, 출당까지 논의되고 있다.


보수정당에서도 한 의원이 물의를 일으키면 최대한 무마해서 의원직과 당적을 유지시켜주려고 한다. 사상과 노선으로 모인 집단이 아니라 이권을 위해 모인 집단이기에 이렇게 해야 당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건까지도 책임을 지워 의원직과 당적을 빼앗으려고 한다. 진보가 내세우는 <동지애>는 찾아볼 수 없다.


마녀사냥에 앞장섰던 <한겨레>가 탈출구가 필요했는지 28일 의미심장한 보도를 했다. 여론조사 결과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 사퇴에 대해 ≪선거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과 부정이 드러났으므로 사퇴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43.4%,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부실과 부정의 정도를 명확하게 밝힌 뒤에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51.1%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지지층으로 좁혀보면 38.2% 대 61.8%로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한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과 방송, 정치인, 전문가들이 나서서 보름이 넘게 마녀사냥을 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이게 <국민의 눈높이>가 아닐까.


이제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양심의 눈치를 보자. 진보의 기본 원칙들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특히 진보당 지도부나 진보당에 영향력 있는 이들은 진보운동에 수 십 년의 세월을 바친 이들이니 진보의 기본 원칙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이제라도 진보답게 문제를 풀어나가자. (201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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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불철주야>가 서버를 이전하면서 <주간 정세동향>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기존의 방송도 그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튠즈에서 검색하시거나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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