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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에 박혀있는 미국의 “정보원”들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3.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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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에 가린 한국외교
우리사회연구소

 

한국은 어찌해서 미국과 불평등한 다양한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는가. 재미 미국 비밀문서 전문가인 이흥환은 『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현대사 35장면』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은 단 한순간도 한국에서 눈을 뗀 적이 없다. 가깝게는 해방 이후 미군정 때부터이고, 멀게는 1800년대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한국을 관찰하고, 토론하고, 보고하고,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미국은 자기 이익을 위해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흥환의 지적대로, 미국은 한국을 유심히 관찰하며 정책을 만들고 그것이 한국에 집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입해왔다. 

미국의 개입은 지금껏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증거가 드러난 것은 드물었다. 2011년 “위키리크스”에 의해 미국의 외교전문이 폭로됨으로써, 은폐된 미국의 행동이 일부 드러났다. 미국 외교전문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미국의 정보원이 한국사회 내에 매우 다방면적이면서 권력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 협상의 실질적 당사자들이 동맹이라는 간판 아래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애쓰고 있으니 각종 불평등 협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권력을 쥔 핵심 인사들이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모습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전문에서 커다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미국 외교전문에 드러난 ‘정보원’의 실체에 대하여 살펴보자. 

1)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미국 “정보원” 

미국의 정보원은 주한 미국대사가 작성한 외교전문에서 ‘콘텍트(contact)’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contact'는 사전적으로 ‘정보의 원천, 정보원(情報源)’을 뜻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contact’는 흔히 첩보계에서 ‘정직한 협조자’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 등장하는 ‘정보원’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등장한다. 먼저 단순 ‘정보원(a contact)’, 그리고 ‘우리 정보원(our contact)’부터 ‘오랜 미 대사관 정보원(Long-time embassy contact)’, ‘믿을만한 정보원(reliable contact)’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게다가 특정 정부부처를 지목한 ‘청와대 정보원(Blue house contact)’, ‘국회 정보원(National Assembly contact)’, ‘외교통상부 정보원(MOFAT contact)’, ‘통일부 정보원(MOU contact)’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이들 단어만 보아도 정부 주요 부처마다 미국 정보원이 존재해 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이 미국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일례를 들어보자. 미국은 한국 외교통상부 중동과에 구축해둔 미국 정보원들을 통해 2006년 이라크 아르빌 지역 재건팀을 이끌어 갈 외교관의 인선 과정을 탐문한 바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11월 8일 외교전문에서 “외교통상부 중동과에 구축해둔 정보원들을 통해” 아르빌에 파견될 외교관이 “박규옥”임을 확인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한국외교에서 중동담당부서는 외교의 변두리지역이라는 점이다. 외교의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중동 담당 부서에도 미국 정보원들이 있음을 볼 때, 외교통상부의 주요 부처인 북미, 일본, 중국 담당은 더욱 광범위한 미국의 정보원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위키리크스”에 의한다면 이러한 실태는 외교부 뿐만 아니라 통일부를 비롯한 다른 정부 주요 부처에도 함께 적용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정부도처에 미국의 “정보원”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정보원들은 한국보다 미국 입장을 대변하거나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행태를 살펴보자. 

2) 미국의 오래된 정보원, 최시중 

맨 먼저 살펴 볼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목되어 언론통신분야를 담당한 최시중이다. 최시중은 2008년 추석 직전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의원들에게 수천만원이 들어있는 ‘돈다발 쇼핑백’을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4년간 차지하고 있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에서 밀려난 자이다. 최시중은 포항 출신으로, 이상득과 이재오 전 특임장관 등과 함께 2007년 당시 이명박 대선본부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6인회’의 멤버이다. 또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종합편성채널 방송을 강행하는 등 ‘정책 홍보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인물이다. 



이미 최시중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회장 시절이던 1997년 12월 12일부터, 당시 주한 미국대사인 스티븐 보즈워스를 만나 15대 대선 사전 여론조사 결과를 유출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 KBS 탐사보도팀의 취재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당시는 대선을 며칠 앞둔 시기로 여론 조사 결과가 법적으로 공표 금지된 시기였음에도 최시중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 이를 몰래 주한미대사관으로 유출한 것이다. 최시중의 여론조사 결과 유출행위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최시중은 이후에도 한국갤럽 회장 신분으로 “한국 정치에 관해서……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주한미국대사와의 잦은 접촉을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10월 12일, 최시중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미국 대사관의 오랜 정보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시중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고위 참모 자격으로 당시 주한 미국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를 만나 대선 판도에 대한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다. 미 대사관은 최시중과의 만남을 통해 2007년 한국 대선의 판세를 가늠했던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미국 외교전문의 일부이다. 

한국 갤럽의 전 오너이자 현재 이명박 후보의 고위 참모인 최시중은 최근 우리에게, 이 후보가 리버럴 진영의 선두후보에 현재 30%가량의 지지율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통합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승자가 10월 15일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지지율 상승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악한 선거 관찰자이자 미국 대사관의 오랜 정보원인 최시중은 통합민주당이 정치적 실수를 계속할 것이고 그래서 후보 선출과 차후의 단일화 등을 활용하는데 실패할 것이라며 조심스레 낙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강조-옮긴 )

또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1월 18일자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1월 17일 최시중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 자격으로 미국 대사를 만나 초대 외교장관 인선에 관한 정보를 슬쩍 흘리기도 하였으며 이명박 당선자가 “미국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사퇴하기 전까지 이명박 정권의 비민주적 방송언론 정책을 강행시켰던 핵심 권력자였다. 권력핵심부에 앉게 된 그의 지위를 감안해볼 때, 2007년과 2008년에 확인된 최시중 위원장과 주한 미국대사관 사이의 접촉은 그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어 한국의 방송통신을 거머쥔 이후에도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미국 정보원으로서 최시중의 가치는 그가 공직에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3) ‘절대보호’ 정보원 청와대 비서관 

미국의 정보원에는 아예 청와대 대통령비서관들까지 동원되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문건을 통해 ‘청와대 정보원들(Blue house contacts)’이 미국 대사관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살펴보자. 

2007년 9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쇠고기 수입개방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로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이 당시는 한국과 미국사이에 한창 FTA협상이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미국은 협상 전략 수립을 위해 정상회담 사흘 전인 9월 4일 주한 미 대사관 소속 경제참사관에게 청와대 경제정책담당 김승호 비서관을 만나 FTA와 쇠고기 수입개방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탐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 대사관은 김승호 비서관과의 대화 내용을 당일 미국으로 전송하였다. 다음은 그 전문의 일부이다. 

9월 4일, 우리 대사관 직원은 청와대 경제정책 비서관 김승호(절대보호요망, 원문 - strictly protect)를 다시 만났다. 그는 이번 주 열리는 APEC 경제 정상회의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분야 브리핑 자료를 준비하는 책임자이다. 김 비서관은 앞선 만남에서도 한미FTA와 쇠고기 이슈와 관련해 우리에게 청와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 가치 있는 정보원이다(Kim is a valued contact who provided us insights into Blue House thinking.) (강조-옮긴 이)

미국의 ‘절대보호’가 필요한 ‘가치 있는 정보원’ 김승호 청와대 비서관은 미국에게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 관련 청와대 내부 전략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전달하였다. 

김 비서관은 또 노 대통령이 뼈가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예상 질문 대응 논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만약 한국이 모든 월령, 모든 부위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 있도록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바꾸기를 미국이 원한다면, “제발 한국의 이웃 국가인 일본과 대만도 그와 똑같은 조건으로 해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일본과 대만 수준의 강화된 검역조건을 보장해줄 경우에만 미국 쇠고기 개방요구를 수용하겠다는 협상전략을 가지고 갔던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쇠고기 검역 주권을 강화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이 향후 대응 방향을 마련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관이 협상 상대방인 미국에게 한국의 작전을 모두 발설했다. 가히 충격적이다. 최시중 “정보원”과 김승호 “정보원”은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되어버렸지만, 이 사건이 최시중, 김승호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극히 일부분이다. 미국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정부 도처에서 아직 노출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원”들을 접촉하며 한국사회에 개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4) 대통령을 속인 반기문 외교안보수석

최시중처럼 미국의 “정보원”으로 폭로된 바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을 위해 복무하는 한국관리는 도처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서는 “외교통상부”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의하면 미국과 가장 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정부 부처는 외교통상부인 듯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이후 한·미 FTA 등의 협상 과정에서도 외교통상부는 별 다른 이견 없이 미국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였다. 2006년 4월 6일 외교전문에 따르면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외교통상부는 협상 당사자인 한국 농림부를 능가할 정도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아래는 그 전문의 일부분이다. 

외교부가 농림부에 수입 재개를 촉구·회유 중이고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의 향방을 결정짓는 건 외교부가 아니라 농림부이며, 외교부가 농림부 입장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외교통상부는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게 정보를 보고하며 미국을 위해 움직였다. 이러한 외교통상부에서 미국을 위해 일하는 인물들은 대표적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정부관료를 들 수 있다. 반기문은 1962년 충주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적십자사의 ‘청소년적십자 국제견학 및 연구대회’(Operation VISTA in the United States)에 대한적십자사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미국에서 잠시 유학하였다. 반기문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후 1970년 2월 외무고시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3월부터 외무부(현 외교통상부)에서 공직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이후 외무부 지원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에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반기문의 행적은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9월 주미 공사 등 주로 외교부 핵심부서인 미국관련 부서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반기문은 국제연합(UN)에서 근무한 후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고 이후 외교통상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에도 올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충격적이게도 외교보좌관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따돌린 일이 있었다. 2003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협상을 벌이던 당시 외교통상부 협상팀이 대통령을 배제한 채 협상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PD는 그의 책 <보수를 팝니다>에서 당시 협상의 책임자로 반기문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목한 바 있다. 아래는 2003년 11월 1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평가 결과보고’에서 밝혀진 당시 협상팀의 협상 방침이다.

- 대통령은 반미주의자이므로 협상 개입을 최소화 시킨다. 

-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의 돈이 들든지 추진해야 한다. 

- 국회와 국민들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으로 문자와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김용민 PD는 이와 관련하여 “도대체 이거 어느 나라 협상팀의 방침인가? 한미 양국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게 무슨 협상이겠는가?”라며 한탄하였다.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따돌리면서까지도 미국의 이익을 중시하였던 그의 끝없는 “친미적” 업무방식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과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5) 미국을 위해 ‘죽도록 싸운’ 김현종,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통상교섭본부의 핵심 인사였던 김현종과 김종훈도 주목된다. 김현종은 통상교섭본부장 재직 당시 김종훈 후임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한·미 FTA 협상을 주도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미국 변호사 출신인 김현종은 국내에 들어온 후 홍익대 교수를 지내다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서 통상교섭조정관으로 발탁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김현종은 노무현 정권인 2004년 7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하며 대외 무역 정책의 핵심인물로 손꼽혔다. 그는 캐나다, 인도, 멕시코, 남미공동시장(MERCOSUR), 싱가포르, EU, ASEAN, 미국 등 수많은 국가 혹은 국가연합과 FTA 협상을 주도하였다. 한미FTA 협상을 마무리 지은 김현종은 이후 주 유엔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종훈은 외무고시 8회로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후 30년 이상 외교부에만 몸담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94년부터 3년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경제참사관으로 일하면서 외국산 담배개방 협상, 미국산 냉동육의 유통기한 문제와 통신 협상 등에 모두 참여했다. 2005년까지 APEC 대사 등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김종훈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던 2006년 2월, 한미FTA 협상의 한국측 수석대표로 발탁되어 김현종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협상을 추진했다. 이후 김종훈은 이명박 정권에서 김현종의 후임으로 통상교섭본부장이 되어 한미FTA 재협상과 국회비준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책임지게 되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의하면, 이 둘은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협상을 진척시킨다’는 명분하에 미국의 이익과 입장을 한국정부에 강요하거나 심지어 대통령의 협상 방침까지 어기면서 한미FTA를 성사시키려 하였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의한다면, 이들은 한국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면서 정작 업무는 미국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일례로 한미FTA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2006년 당시 김현종 본부장의 행보를 보자. 김현종은 한미FTA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던 2006년 7월 24일 청와대 관계자 회의 후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7월 24일 오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발표에 대해서 미국 정부에 미리 알리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미국이 의미 있는 코멘트를 할 시간을 주며, 자유무역협정(FTA) 의약품 작업반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 관철되도록 죽도록 싸웠다(fighting like hell)고 말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통해 5년간 약값 5조원을 깎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미FTA협상은 두 번이나 중단된 적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방안은 타미플루 등 특허가 만료된 약제를 적극적으로 복제 생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으로 미국 제약사의 독점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특히 ‘타미플루’를 제작하는 미국 제약사인 ‘길리드(Gilead Sciences)’사는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재무부 장관 조지 슐츠 등 미국 내 유력인사들을 이사로 두고 있었다. 미국이 한국정부의 약제비적정화방안 추진을 사전에 인지한다면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움직일 것은 자명하였다. 

그런데 김현종은 타미플루의 국내생산을 추진하도록 한 정부 방침을 미국에 미리 흘려주었다. 2006년 11월 3일 미국 외교전문에 의하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더불어 복제약 생산계획을 미국에 구체적으로 알려준 인물은 질병관리본부의 이덕형 센터장이다. 결국 유시민 장관의 약제비적정화방안은 현실화될 수 없었다. 한국 협상대표가 미국정부에게 FTA 협상에 영향을 주는 청와대 내부 회의내용을 알리고 한국 약제비 정책으로 미국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죽도록 싸웠다’는 말이다. 김현종이 한국의 공무원인지 미국의 공무원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6) 남북정상회담 준비내용을 유출한 고위관료들 

남북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2007년 8월과 9월, 청와대 통일안보전략 비서관 박선원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보안내용을 미국에 유출하였다. 

여기에는 통일부 차관 엄종식도 한 몫 하였다. 먼저 박선원 비서관은 노무현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후인 2007년 9월 4일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담당관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에게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된 경과를 상세히 보고하고, 이를 추진했던 보안 조직 구성원 명단을 미국에게 유출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미국 외교전문이다. 

9월 4일 미국 부대사 직무대행 조지프 윤과의 저녁 회동에서, 박선원 청와대 통일안보전략 비서관은 노무현정부가 지난 수년간 남북정상회담을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박 비서관 자신과 이종석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국정원 간부 서훈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전권 그룹이 4년 전 청와대 내에 직접 꾸려졌다고 말했다. 첫 번째 접근은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이뤄졌다. 정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남쪽에 답방하겠다던 약속을 상기시켜줬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고 했다. …… 8월 6일 마침내 북측이 8월 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 한국 정부 내 모든 고위 관리들은 8월 8일 남북 정상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8월 말로 예정되었던 2차 남북정상회담은 당시 북한의 수해로 인해 10월로 연기된 바 있다. 미국은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추진 세력과 경과를 면밀히 파악한 데 이어 엄종식 통일부 차관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제와 실무준비과정도 탐문하였다. 

우리의 통일부 정보원들에 따르면, 지난주 개최된 북한과의 준비회의에서 양측은 단지 운송, 언론 공동 취재, 숙박 등의 실무계획만 합의했다. 정상회담 의제는 여전히 빈 페이지로 남아있고, ‘첫날, 회의 후 오찬’ 정도의 내용만 채워져 있다고 한다. 우리의 통일부 정보원들은 회담 의제가 구체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회담 의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달렸다고 하는 것이 북한 측 준비단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에 언급된 ‘우리의 통일부 정보원들’ 중 한 사람은 후에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송민순 의원에 의해 통일부 엄종식 차관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통일부를 통한 정보 수집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가장 유익한 상대인 외교통상부의 정보원을 통하여 정상회담과 관련한 더욱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외교통상부가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회담 결과를 우리 대사에게 보고할 때 사전에 준비된 내용만 설명한 점도 외교통상부가 보다 핵심적인 회의에 접근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외교통상부 정보원들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평화체제로 가기 위한 ‘3자 또는 4자’관련국이라는 용어를 반대했지만, 공식 공동선언문에 결국 그 구절이 그대로 들어가고 말았다고 했다. 

북한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국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자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장해 온 핵심 장치인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갈수록 약해졌던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해소되면 미국은 그동안 한국에서 누려온 특권적 지위와 각종 이익을 상당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미리 파악하여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위의 외교전문은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문 문구 하나에도 민감하게 대응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미국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남북 사이의 사소한 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7) 국익 갖다바치는 미국 ‘정보원’, 어찌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한국 내에 광범위한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난 미국 정보원은 한편으로 피동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특히 대통령과 권력의 핵심인사들이 자신을 한국을 위한 ‘새로운 보수’로 포장하고는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은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통해 드러난 미국 외교전문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5만 1287건의 외교전문은 미국 정부 부처간 정보공유 시스템에 공개된 기껏해야 2급~3급, 대다수는 기타 보안등급으로 분류된 비밀전문일 뿐이다. 

미국이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구축해 놓은 촘촘한 인적 정보망은 이처럼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무기력해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민족의 자주권을 옹호하고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대통령의 교체가 아니라 정부구조, 외교구조의 대수술이다. 한국사회의 고위관료집단, 권력구조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공정한 한미관계를 구현하는 것은 한갓 바램에 그칠 수 있다. 

미국 외교전문은 한국정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를 시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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