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의 완화
작년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로 극도로 경색되었던 한반도 정세가 최근에 완화되고 있다. 카터가 이북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전했고 최근에는 이명박이 김정일 위원장을 내년의 핵정상회담에 초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인사들의 이북에 대한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고 북에 대한 식량지원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제국주의에 의한 이북에 대한 압박정책이 한계에 달하고 중국과 이북의 관계 강화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20일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중국과 미국의 대화와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간에는 최근에 3차 경제전략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작년의 격심한 대립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 변화에 따라 북-미 대화, 남-북 대화 그리고 6자 회담이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정세의 완화라는 점, 그리고 이북의 고립상태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명박 정권으로서도 경색된 남북 관계의 유지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지지율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남북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개선,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대북 압박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점 등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변화는 긴장완화의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정세의 전개는 한국 내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작년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직후 고조되었던 냉전적 시각과 반공분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민중투쟁에 좋은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 변화가 아직 확고한 추세는 아니다. 이북의 고립상태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도 아니고 미제국주의의 대북압박정책도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중국과 한-미-일 동맹의 대립구도 또한 여전하다. 따라서 현재의 한반도 정세의 완화는 일시적이고 미제국주의의 전술적 후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하고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민중투쟁을 강화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현 정세의 특징들
현재 세계정세를 규정하는 근본적 원인은 세계 대공황이다.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았고 그리스의 경우 채무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중동의 민중혁명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중동 민중혁명에 대한 제국주의 진영의 반격으로서 리비아 전쟁, 시리아에 대한 제재, 그리고 빈 라덴에 대한 사살이 전개되었다. 세계정세의 하나의 축으로서 중동에서 민중 대 제국주의의 치열한 대립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대공황과 세계정세의 변화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공황의 여파로 한국의 경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건설사들이 부도에 몰리고 건설사들에 대출해주었던 저축은행들이 파산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인플레이션이 한국에도 직수입되어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거대한 금융사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황구제를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이 찍어낸 돈이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고 한국의 경우 그 여파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중들의 실질소득이 2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대공황의 발발 후에 한국의 독점자본들은 수출의 호조로 안정을 되찾았으나 위기를 전가받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처지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경제적 투쟁도 전개되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113개 사업장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투쟁 또한 처절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직 투쟁의 물결이 상승하는 추세는 아니나 경제위기를 전가받는 노동자와 민중의 입장에서는 투쟁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밑으로부터 서서히 경제적 대립, 투쟁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 측면을 보면 지난 4.27 재보궐 선거의 결과로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20% 대로 떨어졌다. 이는 대북 강경책, 타임오프제 도입 등 노동자 탄압, 한-미 FTA 강행 등 전반적인 반민중적인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심판이었다. 그동안 경제를 살렸다는 평가 때문에 50%의 지지율이 유지되었으나 올해부터 다시 악화되고 있는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4.27재보궐선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되었다. 한나라당에서도 내년의 총선을 위해 이명박과 거리두기를 시작했고 소위 국책사업의 지방이전을 둘러싸고 지역간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왔던 박근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편 민주당은 4.27 재보궐 선거의 승리로 기세가 올라있다. 손학규가 차기 대선 주자로 발돋움을 했고 내년의 총선에서 수도권의 승리를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계급적 본색은 재보궐 선거 후의 한-EU FTA 국회통과로 드러났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위한 정지작업의 성격이 짙은 한-EU FTA에 대해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통과시킨 것이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연대전술을 구사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한-EU FTA의 야합 처리로 인해 뒷통수를 맞았지만 그에 아랑곳 없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야권연대전술을 펼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민주노동당 이외의 상당수의 진보민중진영의 세력이 동의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통합파와 독자파로 갈려져서 내홍을 겪고 있는데 통합파의 경우 야권연대전술까지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외곽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압박하고 있는 ‘진보의 합창’에 참여하고 있는 명망가들 또한 야권연대 전술을 상당수 긍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이 주요하게 참여하고 있는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8인 연석회의는 이북의 문제, 패권주의 등을 쟁점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5월 말을 기점으로 통합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외에 ‘제안자 모임’,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 등이 4.27 재보궐 선거 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어서 진보정당 운동을 둘러싼 춘추전국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민주노총 또한 진보정당 통합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단결하여 하나의 대오를 이루는 것은 진보민중 진영 전체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통합의 흐름은 투쟁을 통한 진보정당 건설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민중투쟁들을 엄호하고 밑으로부터 논의가 아니라 상층 중심의 논의로 되고 있고 세력 규합의 양상을 띠고 있는데 그 결과로 소위 야권연대 전술 또한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진보의 가치는, 민중의 대의는 외면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현재와 같이 야권연대 전술, 혹은 민주당과의 연대 전술이 강화된다면 진보민중진영의 의석수는 약간 늘 수도 있지만 진보민중 진영의 독자성은 결정적으로 훼손되는 것이고 이는 진보민중 진영 전체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개량주의적 흐름과는 달리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사뭇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노위는 강령논쟁을 한창 전개하고 있고 해방연대는 강령 논쟁을 위한 팜플렛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즉, 현재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상태는 강령 즉, 투쟁의 목표를 설정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에 따라 현재 전개되고 있는 진보정당운동들의 움직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에 진보정당이 아닌 사회주의 당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주의 진영의 정치적 힘은 미약하고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현 정세의 쟁점들
위와 같은 진보정당운동들의 이합집산의 흐름은 현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성격이 개량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정세에 주동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지는 못한다. 단지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양상에 머물러 있고 진보민중진영 전체의 원대한 전망에 기초한 전략, 전술의 수립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형성되고 있는 계급투쟁의 쟁점들을 살펴보면 현 정세의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차적인 쟁점은 4.27재보궐 선거에서 민중들이 이명박정권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것, 경북 칠곡 주한미군 기지에서 고엽제를 무단으로 묻은 사건이 향후 반미투쟁의 발발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 한-미 FTA 저지투쟁이 국회비준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것, 대공황의 영향으로 밑으로부터 노동자와 민중의 경제적 투쟁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는 것, 노조운동에 대한 탄압이 개악노동법으로 구체화되고 있어서 노동법개정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 예상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쟁점들의 성격은 경제적 투쟁의 성장에 기반한 정치적 투쟁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 투쟁이 꾸준히 성장할 수밖에 없는 정세이며 그에 기초하여 노동법 투쟁, 선거투쟁 등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 투쟁은 경제적 성격과 정치적 성격이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서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주요고리이며 현재와 같이 이명박정권의 레임덕이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중해야할 투쟁고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경우 노동법개정을 상층 중심, 민주당과의 협상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있어서 투쟁의 조직에서 많은 편향을 범하고 있다. 또한 한-미 FTA 비준저지 투쟁과 고엽제 투쟁 또한 미제를 규탄하고 반미투쟁을 고양시킬 수 있는 쟁점이며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고리로 작용한다. 선거투쟁 또한 현 정세의 주요한 고리이다. 개량주의 세력은 선거에 목매달고 있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민중진영의 약진을 이루어야 하는 것 또한 과제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대연합전술로 되어서는 오히려 진보민중진영을 약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 전술은 연립정부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진보민중진영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분열시킬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민주대연합 노선과 투쟁하면서 진보의 가치, 민중의 대의를 고수하고 선거투쟁을 통해서 진보민중진영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현 정세의 성격은 그동안 정세를 규정해왔던 퇴조기라는 규정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세계대공황의 영향을 기초로 정치적 역관계도 일정하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와 민중투쟁이 고조되거나 정세가 고양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의 주요한 원인은 노동자와 민중투쟁을 이끌어가야 할 정치세력들이 대부분 개량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현 정세에서 개량주의 노선의 핵심인 민주대연합노선에 대한 반대의 연합을 건설하고 강화하면서 현재 형성되고 있는 정치적 쟁점에 적극 개입하고 민중투쟁을 엄호할 필요가 있다. 경제투쟁, 노동법 투쟁, 한-미 FTA 저지 투쟁, 고엽제 투쟁 등 제반의 투쟁을 엄호 지원해야 한다. 현 정세의 반전, 퇴조의 시기의 마감과 고양으로의 반전은 이러한 투쟁들의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 시기의 전술 목표
이와 같이 현 정세는 시간이 갈수록 변화의 내적 계기를 강화해가고 있다. 지금은 그러한 정세의 성격에 대해 진보정당운동을 중심으로 개량주의 세력이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진보정당운동을 둘러싼 이합집산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에서 노동자계급이 보아야 할 것은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정세변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전술적 목표는 정세의 반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관성적으로 선언되어 왔던 ‘반격’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세계대공황의 영향이 한국에서 정세반전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높이고 있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정세의 성격에 조응하여 정세의 반전을 전술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전술적 목표 하에 한-미 FTA 저지투쟁, 고엽제 투쟁의 강화로 미제를 타격해야 하며 반동적인 한-미 동맹을 약화시켜야 한다. 또한 공황이 야기하는 경제투쟁의 강화를 지지, 지원하면서 노동법 개정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의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은 이러한 투쟁의 강화와 상승의 결과로서 위치지워져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투쟁의 방식은 수세적 투쟁이 아니라 공세적 투쟁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대중과 민중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우고 지배계급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 선거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투쟁에 의해 전진해야 하고 전진할 수 있음을 알리고 조직해야 한다.
중동의 혁명은 세계적 차원에서 민중들의 행동성이 고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지표이다. 한국의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행동성을 강화해가야 한다. 개량주의 세력이 목매달고 있는 선거는 민중의 역량의 강화의 하나의 계기는 될지언정 주요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역량의 성장은 의회 투쟁을 넘어선 현실의 투쟁,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해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량주의 세력은 진보민중진영의 일 구성부분이지만 이들은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 한계를 보인다. 투쟁에 있어서 개량주의 세력은 처음과 끝이 다르다. 따라서 변혁적 세력은 개량주의 세력과 진보민중진영의 단결이라는 차원에서 함께 해야 하지만 투쟁의 조직에 있어서 이들이 민중 투쟁력을 잠식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처음과 끝이 같은 투쟁, 민중을 고양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김빼기식의 투쟁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세의 반전을 현실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강령을 넘어서서 혁명적이고 과학적인 전술을 수립해야만 한다. 하나하나의 쟁점에 대해 보다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한 투쟁 하나하나가 쌓여 갈 때 어느새 정세는 고양으로 접어들 것이고 노동자와 민중은 권력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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