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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계획국이 알지 못한 예비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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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_달 2011. 4. 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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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1년 04월 25일 (월) 07:35:53


2011년 4월 18일 아바나에서 있은 일

2011년 4월 18일 세계 언론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이목을 집중하였다.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쿠바공산당 제6차 대회 기간 중에 4월 18일은 개혁안을 채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쿠바에 무관심한 남측 언론은 쿠바공산당 제6차 대회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쿠바공산당의 개혁안 채택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계획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측과 쿠바 두 나라 뿐인데, 쿠바공산당이 개혁안을 채택한 것은 현존하는 계획경제의 ‘서방진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음을 뜻한다.

쿠바공산당의 개혁안 채택과정은 2010년 11월에 발행된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을 위한 초안 지침서(Draft Guidelines for Economic and Social Reform)’를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쿠바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 인민들 891만3,838명이 그 초안 지침서에 수록된 78만 개의 각종 제안을 토론하였다. 그 토론회를 이끌 당간부 400명이 전국 각지에 파견되었다.

각계각층 인민들이 민주적으로 토론한 결과와 각 당위원회들이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분석, 검토한 결과를 종합하여 ‘혁명과 당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초안 지침서(Draft Guidelines of the Economic and Social Policy of the Party and the Revolution)’가 작성되었다. 그리하여 4월 18일 쿠바공산당 제6차 대회에 참석한 당대표들이 그 초안 지침서를 검토한 뒤에 313개에 이르는 정책안을 의결한 것이다. 각계각층 쿠바 인민들의 요구와 의사를 반영한 고도의 민주적 합의절차가 돋보인다.

4월 18일 쿠바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의결한 개혁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2011년 4월 19일 <쿠바통신사(Cuban News Agency)>가 아바나발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 가지 부문에서 변화를 일으킬 개혁안이 의결되었다고 한다. 세 가지 부문이란 경제관리부문, 에너지전략 및 공업전략 부문, 그리고 농업부문이다. <연합뉴스> 2011년 4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그 개혁안에는 공무원 100만 명 이상 점진적 감축, 식량배급제 폐지, 국영기업의 자율성 신장, 정부지출 삭감, 외자유치 활성화, 주택매매 허가 등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쿠바공산당이 이러한 개혁안을 채택한 배경에는 경제위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놓여있다. 2010년 12월 18일 라울 까스뜨로(Raul Castro) 국가평의회 의장은 인민권력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쿠바의 심각한 경제위기에 대해 “우리는 현 상황을 바꾸던가 아니면 벼랑끝으로 밀려가 침몰하던가 둘 중에 하나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바 경작지 350만 헥타르 가운데 거의 50%에 이르는 경작지에서 경작이 되지 않는 바람에 미국으로부터의 식량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가공급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개인영업이 크게 늘었고, 아바나 시민 가운데 19%가 취업포기상태에 있으며, 전력난을 겪고 있다.

쿠바공산당이 제6차 대회에서 의결한 경제관리부문 개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국영기업의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결정사항이다. 국영기업의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말은 경제관리부문에서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뜻이다. 경제관리부문에서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기존 경제관리체계를 자율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로 개혁한다는 뜻이다.

국가경제발전에서 경제관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경제관리를 과학적으로 실행해야 생산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쿠바공산당이 기존 경제관리체계를 개혁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기존 경제관리체계가 근로대중의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급 생산단위에서 일하는 근로대중에게 자율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근로대중의 자율성이란, 누가 일을 하라고 시켜서 공동노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대중이 자발적으로 공동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학교당국이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시켜서 마지 못해 등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습열의를 가지고 등교해야 학습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쿠바의 경제관리체계는 어떻게 운영되었기에 근로대중의 자발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쿠바의 경제관리체계는 옛 소련에서 설계되어 쿠바로 수입된 소련식 체계다. 쿠바는 이제껏 소련식 경제관리체계를 운영해왔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경제관리체계를 구성하는 양대 요소는 계획(planning)과 경영(management)이다. 생산계획을 어떻게 작성하고, 생산활동을 어떻게 경영하는가 하는 것은 경제관리의 핵심문제다.

쿠바의 여섯 단계와 북측의 일곱 단계는 무엇이 다를까?

사회주의나라의 경제관리는 국가경제 생산계획에 맞물려 돌아간다. 사회주의경제가 계획경제(planned economy)이므로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도 생산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갈라놓는 근본적 차이는, 계획적으로 생산하는가 또는 무계획적으로 생산하는가 하는 생산계획문제로 귀착된다.

시장경제에도 생산계획이 있기는 있다. 개별적 생산단위들이 각자 생산계획을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생산활동을 전개한다. 그런데 시장경제에는 이처럼 개별적 생산계획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전체적 생산계획은 없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나라에서는 국가경제 생산계획을 작성하지 않고 시장에 방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적 생산단위의 생산계획과 국가경제 생산계획 부재 사이에서 모순 발생은 필연적이다. 그 모순이 격화되어 파멸적인 공황에 빠지게 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와 다르게, 계획경제에는 개별적 생산단위 생산계획도 있고 전체적 국가경제 생산계획도 있다.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합리적으로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에서 나타나는 계획적 생산인가 아니면 무계획적 생산인가 하는 본질적 차이는, 결국 국가경제 생산계획을 작성하는가 또는 작성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계획경제에서 국가경제 생산계획은 누가 작성하는 것일까? 국가경제 생산계획을 작성하는 것은 국가계획위원회다. 국가계획위원회를 옛 소련에서는 고스플란(Gosplan)이라 했다. 고스플란이란, 소련에서 1921년에 창설되었다가 1991년에 소련 해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 국가계획위원회(Gosudarstvenny planovy komitet) 명칭에서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쿠바에서는 국가계획위원회를 중앙계획국(Junta Central de Planificación)이라 부른다. 1962년 중앙계획국에서 첫 국장직을 맡은 사람은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였다.

소련식 경제관리체계를 수입한 쿠바는 중앙계획국이 작성한 생산계획에 따라 국가경제를 운영하여왔다.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 소련식 경제관리체계를 운영해온 쿠바공산당이 왜 이제와서 경제관리체계를 개혁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설명하려면, 쿠바에서 생산계획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쿠바의 소련식 생산계획 작성을 단계별로 설명하면 이렇다.

1단계 - 쿠바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중앙집단(Central Group)’에서 예비계획목표(preliminary plan target)를 정하여 중앙계획국으로 보낸다. 예비계획목표를 통제숫자(control figure)라 한다.
2단계 - 중앙계획국은 통제숫자에 기초하여 생산계획 초안을 작성하여 경제계획개발부(Estado de Economia, Planificación y Desarrollo)에 보낸다.
3단계 - 경제계획개발부는 각급 생산단위들에 생산계획 초안을 보낸다.
4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에서는 자기들이 받은 생산계획 초안에 필요한 노동력, 자본, 에너지, 원자재를 산출하여 경제계획개발부에 제출한다.
5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의 산출보고를 받은 경제계획개발부는 중앙계획국과 함께 생산계획 초안을 조정하여 생산계획을 확정한다.
6단계 - 확정된 생산계획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출되어 승인을 받고,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보낸다.

여섯 단계를 살펴보면, 쿠바의 중앙계획국과 경제계획개발부가 각급 생산단위들과 소통하지 않고 국가경제 생산계획을 작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향식으로, 일방통행식으로 작성된 생산계획은 공동노동에 참가한 근로대중의 자발성 자각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산적 열의를 떨어뜨리는 결함을 드러낸다. 그러한 소련식 생산계획 작성을 수 십 년 동안 계속하다 보면, 근로대중의 자발성이 가로막히고 생산적 열의가 떨어져 경제발전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북측에서는 어떻게 생산계획을 작성하고 있을까? 북측의 생산계획 작성과정은, 199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2차회의에서 채택하고 2010년 5월 17일 수정보충한 인민경제계획법 제2장 ‘인민경제계획의 작성’에 법적으로 규정되었다. 이 법의 제16조, 제17조, 제18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에 따르면, 북측의 생산계획은 일곱 단계를 거쳐 작성된다.

1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에서 예비숫자(preliminary figure)를 작성하고, 그것을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2단계 - 국가계획위원회가 예비숫자에 기초하여 통제숫자를 작성하고, 그것을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보낸다.
3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에서 통제숫자를 놓고 군중토의를 진행하고, 군중토의 내용을 반영한 생산계획 초안을 만들어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4단계 - 국가계획위원회가 생산계획초안을 검토하여 생산계획을 작성한다.
5단계 - 내각과 인민위원회가 생산계획을 검토한다.
6단계 - 최고인민회의 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생산계획을 승인한다.
7단계 - 승인, 확정된 생산계획을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보내 세부화, 구체화한다.

북측에서는 국가계획위원회가 작성하는 생산계획을 전략계획이라 하고, 각 부문별 지역별 생산활동 지도단위들이 작성하는 생산계획을 작전계획이라 하고, 각급 생산현장들에서 작성하는 생산계획을 전투계획이라 한다. 전략계획, 작전계획, 전투계획을 일원화하면, 그것이 바로 국가경제 생산계획이다.

북측의 일곱 단계와 쿠바의 여섯 단계를 비교하면, 두드러진 차이가 보인다. 북측의 일곱 단계에는 쿠바의 여섯 단계에는 없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생산계획을 작성하는 첫 단계를 국가계획위원회 책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대중이 일하는 생산현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소련식 생산계획 작성에는 통계숫자가 생산단위로 내려가는 하향식 과정만 있으나, 북측의 생산계획 작성에는 예비숫자에서 시작하여 통계숫자가 작성되는 상향식 과정이 있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작성한 통계숫자는 각급 생산단위들에 보내져 근로대중이 참가한 군중토의를 거쳐 생산계획 초안으로 작성된다. 상부가 자기의 생산계획을 일방통행식으로 생산현장에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상부와 생산현장이 쌍방통행식으로 오르내리는 의사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생산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다.

북측에서는 이처럼 민주적으로 생산계획을 작성하기 때문에, 경제관리부문을 개혁할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북측의 특유한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는 쿠바의 소련식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에 비할 바 없이 선진적으로, 우월하게 설계된 것이다.

소련식 경영전략을 뛰어넘은 북측의 선진경영전략

사회주의생산관리에서 계획 만큼 중요한 것은 경영이다. 생산계획을 민주적 과정과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작성했어도, 생산활동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생산계획 작성과 더불어, 생산활동 경영은 생산능력을 높이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 쿠바의 소련식 경제관리체계에서 생산활동은 어떻게 경영되고 있을까? 생산활동을 경영하는 책임을 지배인(manager) 한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이것을 옛 소련에서는 1인 경영(edinonachalie)이라 했다. 소련식 1인 경영이란, 각급 생산단위들에서 지배인이 모든 생산활동을 지도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1인 경영이라고 해서 지배인이 독단과 전횡으로 생산활동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1인 경영과 근로대중의 합의가 상호결합된 방식으로 생산활동을 경영하게 설계되었다. 다시 말해서, 위로부터의 책임적 관리와 아래로부터의 집체적 합의를 상호결합시킨 것이다.

그런데 1인 경영에는 결함이 있었다. 지배인의 경영능력이 뒤떨어진 경우 생산활동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지배인이 관료주의나 형식주의에 빠지는 위험을 피할 길도 없었다. 만일 경영능력이 부족한 지배인이 관료주의나 형식주의에 빠지면, 생산활동은 아주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된다.

지난 50년 동안 소련식 1인 경영의 결함으로 쿠바의 국가경제발전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련식 1인 경영을 받아들인 쿠바에서는 공동노동에 대한 근로대중의 자발성과 책임성을 자각하게 하고, 그들의 생산적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사업을 중시하지 않았다.

쿠바와 달리, 북측에서는 근로대중이 일하는 생산현장 속에 들어가서 현장정치사업을 진행하는 대중노선(mass line)을 매우 중시한다. 북측에서는 대중노선을 군중노선이라 부른다. 생산관리체계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었어도, 근로대중이 생산활동의 주체로서 자발성과 책임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작업지시에만 의존한다면 생산능력을 장성시키지 못하고 정체될 것이다. 대중노선은 그러한 정체의 위험을 극복하는 전략적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원래 대중노선은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였는데, 그것이 경제관리체계에 정착된 역사는 이러하였다.

1960년 2월 5일부터 보름동안 김일성 주석은 근로대중의 생산현장 속에 들어가 그들과 직접 토론하면서 소련식 1인 경영의 결함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새로운 경영전략을 제시하였다. 그가 만난 근로대중은 청산리협동농장 농장원들이고, 그가 제시한 새로운 경영전략은 청산리방법이다. 대중노선을 구현한 선진경영전략인 청산리방법은, 모든 상급간부들이 생산현장 속에 들어가 하급간부들과 근로대중을 책임적으로 도와주는 사업방법이다. 이 새로운 경영전략은 생산활동을 정체와 일방통행에서 끌어내어 순환과 소통으로 이끌어간다.

김일성 주석은 1961년 12월 6일부터 열흘 동안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공장일군들과 협의회를 진행하고, 노동자들의 생활현장을 방문한 뒤 12월 16일 대안전기공장 문화회관에서 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였다. 그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은 청산리방법을 공업부문 경제관리체계에 적용하여 더욱 심화발전된 새로운 경영전략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대안의 사업체계다. 소련식 1인 경영을 대체한 대안의 사업체계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 지배인 한 사람이 공장경영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장당위원회가 집체적으로 공장경영을 책임진다. 공장에서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공장당위원회다. 공장당위원회는 공장당비서, 지배인, 기사장을 중심으로 당원 노동자들이 구성한다.

둘째, 소련식 1인 경영은 생산지도와 기술지도를 나누어 역할을 분담하였으나, 대안의 사업체계는 생산지도와 기술지도를 통합하여 통일적이고 집중적인 생산활동을 보장한다. 소련식 1인 경영에서 공장당비서는 정치사업에만 힘썼고, 지배인은 생산계획 수행에만 힘썼고, 기사장은 기술준비에만 힘썼을 뿐, 3자의 역할이 어우러져 통합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와 달리, 대안의 사업체계는 정치사업과 생산계획 수행과 기술준비를 통합한 집체적 지도로 생산활동을 추진한다.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집체적으로 해결하고, 집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셋째, 공장과 기업소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사업을 실무적으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생활과 건강을 책임지는 후방사업을 실무적으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의를 부여하고 중시하는 것이다.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는 소련식 1인 경영의 결함을 극복하고 생산관리체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생산활동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동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의 최고영도자는 근로대중의 생산현장 속에 들어가 군중노선을 몸소 실천해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군중노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쉬임없는 현장지도는 군중노선을 실행하는 현장정치사업이다. 군중노선에 의거한 현장정치사업은 쿠바를 비롯한 다른 사회주의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북측에만 있다. 바로 이것이 북측의 사회주의가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와 달리 국가경제를 안정적으로, 빠르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으로 우월한 요인이다. 북측의 특유한 경제관리체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국가경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북측이 달성한 경이적인 고도성장

북측의 계획경제가 성장발전되어온 역사를 논하는 것은 방대한 정보와 자료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므로, 이 글에서 논하기 힘들다. 그 대신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측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루었던 시기는 1970년대다. 당시 북측의 국민총생산(GNP) 증가률은 1970년에 31.0%, 1971년에 15.9%, 1972년에 16.0%, 1973년에 18.9%, 1974년에 17.1%, 1975년에 20.0%를 기록하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북측 경제발전사에서 최고 전성기 6년 동안의 연평균 국민총생산 증가률은 무려 19.8%나 되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5년 동안 북측의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도 8.0%를 기록하였다.

그에 비해, 남측의 시장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루었던 시기는 1980년대다. 당시 남측의 국민총생산(GNP) 증가률은 1983년 11.0%, 1984년 8.4%, 1985년 5.4%, 1986년 12.3%, 1987년 12.0%, 1988년 8.0%였다. 남측 경제발전사에서 최고 전성기 6년 동안의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9.5%였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의 최고 전성기 연평균 성장률이 남측의 최고 전성기 연평균 성장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장주의자들은 1980년대 남측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고 말해왔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최고 수준의 경이적인 고도성장은 1970년대 북측에서 달성되었다. 남측의 시장경제는 북측의 계획경제가 1970년대에 이루었던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절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계획경제야말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통계자료로 입증된다. 계획경제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시장주의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다.

둘째,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1991년에 펴낸 생산연감(Yearbook-Production) 제44권에 나온 통계자료에 따르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동안 전 세계에서 헥타르당 쌀 생산량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른 나라는 북측이다. 북측에서는 1974년부터 단위면적당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는데, 1973년에 3,919kg이었던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은 1974년에 5,000kg으로 급증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측 식량생산량은 1974년에 506만8,000t, 1982년에 603만3,000t, 1986년에 711만4,000t으로 계속 급증하면서 1,000만t 고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북측 경제가 이처럼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요인은, 1960년대에 소련식 경제관리체계를 폐기하고 선진적인 계획과 경영을 도입하여 주체의 경제관리체계를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북측의 국민총생산 평균 증가율은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조정기를 거쳐면서 2.3%로 떨어졌다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9.1%로 크게 반등하였는데, 1991년부터 1998년까지 -6.7%로 급감하였다. 또한 북측 식량생산량도 1992년에 497만3,000t으로 급감하더니 1995년에는 424만5,000t, 1997년에는 266만t으로 최저점에 이르렀다.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자랑하던 북측 경제가 1991년부터 갑자기 위기에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1990년에 기능마비상태에 빠진 사회주의국제시장이 이듬해 소련의 몰락과 함께 완전히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1989년까지 북측은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원료와 자재를 사회주의국제시장에서 우호가격(friendship price)으로 사올 수 있었지만, 1990년부터 우호가격은 폐지되고 현금결재만 가능하게 되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이 해체되던 대혼란기에 소련의 대북 무역액은 44.2% 급감하였고, 북측의 대소 무역액은 46.9% 급감하였다. 특히 북측이 소련에서 수입해온 중요한 두 가지 전략물자수입이 급감하면서 북측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두 가지 전략물자란 석유와 콕스다. 북측은 1980년대 말에 약 100만t에 이르는 석유와 석유제품을 소련에서 수입하였는데, 1990년에는 45만t 이하로 급감하였고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는 4만3,000t밖에 수입하지 못하였다. 또한 북측은 소련산 콕스를 1990년에 14만5,000t 수입하였는데, 이듬해에는 5만3,000t밖에 수입하지 못하였다. 그 밖의 다른 소련산 원자재 수입은 완전 중단되었다. 이것은 북측 경제가 지탱하기 힘든 난국에 빠졌음을 말해준다.

1990년대 후반기에 심각한 위기를 겪은 북측 경제를 살리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한 것이 생산설비의 CNC화, 제철공업의 비콕스화, 비료공업과 섬유공업의 탈석유화다. 생산설비의 CNC화, 제철공업의 비콕스화, 비료공업과 섬유공업의 탈석유화를 추진하는 것은 첨단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첨단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하여 경제 ‘체질’을 갱신강화하는 북측의 방대한 기술개조사업은 자금조달과 기술개발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생산설비의 CNC화를 련하기계가 해결하였고, 제철공업의 비콕스화를 주체철이 해결하였고, 비료공업의 탈석유화를 주체비료가 해결하였고, 섬유공업의 탈석유화를 주체섬유 비날론이 해결하였다.

북측의 산업 전반에 대한 기술개조사업이 그처럼 혁명적으로 실현되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에 투입할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인데, 북측은 2020년까지 10년 동안 1,000억 달러를 집중투자하는 거창한 경제개발사업을 밀고나가는 중이다.

전 세계 자본주의나라들이 파멸적 경제위기에 빠져 허덕이는 지금, 오직 북측만은 세계적 경제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1970년대에 이어 제2차 고도성장기에 진입하였다.

* 출처 :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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