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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일행의 방북, 북한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 한반도 평화협정과 남북정상회담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5. 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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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옥진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4월 28일, 카터(Jimmy Carter) 전 미 대통령을 단장으로 하는 ‘디 엘더스(The Elders)’ 대표단이 2박 3일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을 방문했다. 이들의 방북 일정 중 최고의 관심사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은 없었지만, 그들이 들고 온 북한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북한, 한반도 평화협정과 군축 회담을 일관되게 요구하다

 

방북 전, 카터 일행은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과 논의할 의제가 ‘지역 내 긴장 완화 및 비핵화와 식량 문제’, 즉 정치군사적 문제와 인도주의적 문제라고 밝혔다. 앞서 한미 당국은 카터 일행의 방북 발표를 두고 개인적 방문 내지는 민간차원이라면서 애써 그 의미를 축소했지만, 그들의 속내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카터 일행에게 주목했던 것은 바로 정치군사적 문제, 북한의 비핵화 문제였다.

 

한미 당국은 내심 북한이 카터 일행에게 ‘핵을 포기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를 기대했지만 북한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북한이 카터 일행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는 매우 간명했다.

 

27일,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으며,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지 전제조건 없이 미국, 한국 모두와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큰 난제는 그들(북한)이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 없이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전쟁을 끝낸 정전협정 이후 60년 이상 북한과 한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비극"이라면서 "나의 조국인 미국은 한국의 보증인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큰 우려를 만들어내고 북한의 정치적 에너지와 자원들을 소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과 같이 디 엘더스 홈페이지에 올린 카터 전 대통령의 글을 토대로 볼 때, 북한은 당사국들에게 2010년 1월 1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제안했던 ‘한반도 평화협정’ 회담을 일관성있게 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통해 상호 군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것을 한미 당국에게 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화와 협상은 상호 이득을 주고 받는 것, 일방적 수혜란 없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북미의 입장은 첨예하다. 북한은 북미가 교전관계에 있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 않은 채,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전쟁위협과 고립봉쇄정책을 지속적으로 벌임으로써 한반도 핵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반면 미국은 한반도 핵문제를 두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핵확산금지체제를 무너뜨려 테러집단으로부터 미국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북미 양자간의 상반된 입장은 그의 해결방안에 있어서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로가 각자의 입장과 요구만을 고집한다면 한반도 핵문제는 언제가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핵협상 경험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현재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당국은 북한에게 비핵화의 사전조치로 △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비롯한 모든 핵활동의 중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영변지구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한미가 요구하는 바를 6자회담에서, 그리고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전조선반도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9.19공동성명의 리행과정에서 론의해결될수 있다”는 입장을 표시하였다.1)

 

대화와 협상은 서로의 요구를 주고 받는 것이지 일방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니다. 서로가 우려하는 바를 하나둘씩 내놓고 그에 상응하는 것을 얻는 것이 바로 대화의 목적이며 협상의 기본 태도이자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한미 당국이 자신의 요구가 북한에게 수용되길 원한다면 북한의 요구 또한 한미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대화와 협상의 상도이다. 더구나 북한의 평화협정 회담 요구는 9.19공동성명에 담겨있는 사안이며, 이를 본 궤도에 올려 그 논의를 본격화하자는 것이다.

 

카터 일행의 방북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다

 

‘전략적 인내’와 ‘동맹중시’에 매달려 북한과의 대화를 외면한 결과, 현재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북한을 통제할 수 없는 수순으로 흐르는 것을 더 이상 무시할 수도, 방치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절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미국은 다음과 같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뉴욕채널을 통한 양자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북한과의 민간급 교류가 정치, 경제에서 체육 분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2)3) 또한 2009년 중단된 대북식량지원 재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전제조건을 내세워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일정하게 선을 그으며 대화재개를 압박하고 있다. 카터 일행의 방북이 진행되던 그 시각,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방한하여, 북?중?미가 합의한 ‘남북 수석대표 회담 → 북미접촉 → 6자회담'의 3단계 방안을 재확인시켰다.

 

미국이 카터 일행의 방북에서 기대하는 6자회담 재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미국은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동결과 IAEA 사찰단 잔류 허용 등의 의사를 전달받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면서 한반도 정세를 순식간에 협상 국면으로 전환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 같은 상황이 재연되길 기대하고 있다.

 

카터 일행은 미국의 기대를 일정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카터 일행은 북한의 고위 관리들과의 회동에서 지난 3월 베를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미 양국이 교환한 의견과 내용에 대해 보다 진전된 입장과 내용을 가지고 이를 논의했을 것이다.4) 그리고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나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 메시지,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바로 그러하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을 기꺼이 원하는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이 카터 일행의 방북 결과를 두고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대화 재개를 더욱 압박하고 강제할 수 있는 카드와 명분을 획득한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의사는 이명박 정부에게 더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진정성 타령만 늘어놓으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그 어떤 돌파구도 마련하지도 못하고, 훼방꾼이란 위상만 덧칠하며 주변국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처치를 한번에 전환시킬 수 있다. 남북 앞에 놓여진 현안 역시 남북정상회담 없이는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북한이 한반도 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라며 남한을 거부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남한을 당사자로 인정하고 있다.

 

현재 남?북?미?중이 6자회담 재개 수순을 합의했다고 해서 그 해법과 내용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기존의 입장과 태도 변화없이 북한에게 진정성만을 요구한다면 북?미?중은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중을 배려해온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회담파탄을 들어 미국을 향해서는 과감한 군사적 행동과 중국을 향해서는 6자회담 거부라는 카드를 들었을 때,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에 이해가 같은 미중이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게 보여줬던 배려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남북대화를 6자회담의 수순으로 보는 미중이 한반도에서 위기와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을 외면하고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고 중국 역시 남한의 의사와 상관없이 6자회담 무조건 재개를 서두를 것이다.

 

실리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실기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와 번영 실현이 궤도에 오르고 있는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평가절하하고 외면한다면 남한의 처지와 입장이 어떻게 흐를지는 불보듯 명확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는 남북이 한반도 미래를 결정하고 책임질 당사자로서 서로의 손을 마주잡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끝>

 

** 각주 해설

 

1) 《조선중앙통신》, 2011년 3월 15일.

 

2) 지난 2월 미국 애틀랜타를 방문한 북한 과학자 대표단도 5월에 다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3월 19일부터 4월 2일까지 북한 경제대표단 일행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북한 태권도 대표단도 5월 방미할 예정이다.

 

3) 3월 25~26일, 베를린에서 북한 외무성 연구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한미연구소 연구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러 현안의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실무 토론회를 가졌다. 한편 28~29일에는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등 외무성 관리와 토머스 피커링(Thomas Pickering) 전 국무차관 등 미국의 전직 관리 및 전문가들과의 비공식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아스펜 연구소(Aspen Institute) 독일 지부 초청 형식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 주제와 관련해, 찰스 킹 말로리 4세 소장은 △ 북?미 관계 정상화 △ 한반도 비핵화 △ 재래식 무기 감축 △ 경제협력과 지원 △ 평화협정 체결을 놓고 논의가 진행됐다. 《연합뉴스》, 2011년 3월 31일.

 

4) 카터 전 대통령은 29일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했다. 이는 북한의 의사를 오바마 행정부에게 시급히 전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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