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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낙마를 통해 본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불철주야

by 붉은_달 2013. 3.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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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 조국에 헌신하는 마음은 장관을 시켜주면 생겼다가, 안 시켜주면 사라지는, 그런 마음이다. 이처럼 조국에 헌신하는 마음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인물이 장관이 됐다면 과연 어느 나라를 위해 일을 했을까?


김종훈 낙마를 통해 본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동북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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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표본


박근혜 정부의 최대 부처로 눈길을 끌었던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으로 지명되었던 김종훈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사퇴 배경조차 불분명해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에서 출세한 한국인들의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종훈은 서울에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14살이 되던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17살에 집에서 쫓겨난 그는 고등학교 선생님 집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녀 전교 2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 3년 만에 우등 졸업했다고 한다.


김종훈은 대학 졸업 후 미 해군에 입대하여 핵잠수함 장교로 7년을 근무하였다. 군복무 후 미국해군연구실험실에 머물다 1992년 유리 시스템스(Yurie Systems)란 벤처기업을 창업, 1998년에 루슨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ies)에 매각하여 갑부가 되었다. 당시 재산이 5억6천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2001년 까지 루슨트 테크놀로지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메릴랜드 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사이버넷 회장, 인큐텔(In-Q-Tel) 이사, 벨 연구소 소장, 알카텔-루슨트(alcatel-lucent) 최고전략책임자 등을 역임했다.



▲김종훈


김종훈의 약력을 보면 맨 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자수성가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화려한 경력 뒤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난다.


조국을 돈 벌이 대상으로 여긴 졸부


먼저, 과거 한국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성공한 과학기술자, 벤처사업가라기보다는 돈밖에 모르는 냉혹한 졸부에 가까웠다. 이는 IMF 사태 당시 보여준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IMF 직후인 1998년 위기에 몰린 조흥은행은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유명했던 김종훈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종훈은 일주일 동안 마라톤협상을 벌인 끝에 투자를 거부하였다. 당시 김종훈을 대리해서 협상을 진행한 윈슬로 파트너스(Winslow Partners)라는 펀드회사는 한국 정부와 반반으로 합작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실제보다 낮게 평가된 고위험 투자처에 정부 보증을 요구해 안전장치를 마련한 다음 기업가치가 회복되면 고배당의 투자액을 환수해 거금을 챙기는, 국제 투기 자본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투자를 받지 못한 조흥은행은 결국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김종훈은 부인, 장모, 처남 등의 명의로 강남 일대에 부동산 투기에 집중했다. 부도난 건물을 경매로 사들여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조국이 어려울 때 냉정한 기업 사냥꾼의 모습을 드러내며 은행에는 투자를 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 위기 상황을 활용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셈이다. 그는 한국 경제에는 관심 없고 그저 자신의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벨 연구소 사장 재직시 행적도 논란이다. 당시 김종훈은 서울 벨 연구소를 만들고 2005년 서울시와 계약을 맺고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2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았다. 당시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김종훈은 <미국의 허가 없이는 기술 이전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을 투자 단서로 달았고, 서울시는 <시는 기술 및 특허의 지적재산권 지분 30%를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 벨 연구소는 아무런 특허등록도 하지 않아 <유령 연구소>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쓴 것일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김종훈의 양해각서 조인식 장면


게다가 한 재미동포가 자신의 블로그에 김종훈의 엽색행각을 폭로하여 논란이 일었고 이후 일부 국회의원과 언론에서 이 부분을 집중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맞춰 김종훈이 갑자기 사퇴를 하면서 블로그 내용이 사실이라서 사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됐다.


이처럼 김종훈은 조국에 어떤 기여를 할까 고민하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라기보다는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조국을 돈벌이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졸부에 가까웠다.


미국에 충성한 검은 머리 미국인


김종훈의 더 큰 문제점은 핏줄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다운,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미 해군에 복무한 후 한 해군잡지에 ≪나는 이 나라가 나에게 베풀어준 기회에 대해 은혜를 갚길 원했≫으며 ≪내게 기회를 준 미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젊음밖에 없다≫, ≪군복무는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 통과의례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을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관계를 맺고 많은 협조를 해왔다. 그는 자신의 벤처기업인 유리 시스템스에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이사로 세웠다. 유리 시스템스는 미군에 통신장비를 개발, 납품하는 업체였다. 또한 CIA가 설립한 인큐텔 창립에 관여하고 이사로 근무했으며, 역시 CIA가 설립한 벤처투자사 인큐잇(In-Q-It) 이사도 맡았다.



▲페리, 울시 등과 함께 찍은 사진


또 2001년에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설립한 외부 전문가 민간위원회, 이른바 스코크로프트(Scowcroft) 패널 8명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이 위원회는 CIA, 국가안보국(NSA), 국가정찰국(NRO) 등 미국 주요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과 보호 업무 관행을 점검하는 기구다. 또한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CIA의 자문위원 14명 가운데 한 명으로 활약했다. 그는 CIA 자문위원 활동에 대해 ≪조국(미국)에 거듭 감사를 표현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처럼 김종훈은 미 정보기관과 군산복합체, 미군을 위해 복무한 철저한 미국인이다. 군 복무기간까지 따지면 20년이 훨씬 넘는 기간을 이 분야에 복무했다. 미 군산복합체가 한반도 긴장상황을 이용해 막대한 무기를 판매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김종훈은 미국에게는 애국자겠지만 한국에게는 결코 애국자일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조국관은 사퇴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3월 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 조국에 헌신하는 마음은 장관을 시켜주면 생겼다가, 안 시켜주면 사라지는, 그런 마음이다. 이처럼 조국에 헌신하는 마음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인물이 장관이 됐다면 과연 어느 나라를 위해 일을 했을까?



▲기자회견 장면


이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우상처럼 떠받드는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김종훈 낙마를 통해 확인되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명심하자. (201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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