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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자유주의의 참된 길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9. 1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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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통합진보당이 결국 대규모 탈당 수순으로 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 통합연대가 한 데 뭉쳤던 통합진보당이 그 창당 의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논쟁은 끝이 없고, 많은 당원들이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유시민 전 대표를 비롯한 이청호, 박무, 고영삼 등 참여계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가 문제시되며 국민참여당과 통합이라는 노선의 적합성마저 논란이 일고 있다.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한국정치개혁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던 노사모, 참여당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정의롭고 양심적인 분들이다. 일부 상층 정치인들의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고 여론을 이끈다고 해서 1만명이 넘었던 참여계 당원들 모두가 문제될 수는 없다. 

물론 집단의 화합과 동지애, 단결투쟁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진보진영과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민참여당계 분들은 활동방식의 차이, 나아가 정서적 괴리도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보적 자유주의가 자주통일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진보진영과 함께하지 못할 근원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유시민 전 대표를 비롯한 참여계 몇몇 상층 정치인들의 활동방식이다. 참여계의 건전하고 열정적인 당원들은 언제나 모든 진보세력을 아우르는 통합진보당에 돌아올 자격이 있으며 한국정치지형을 보더라도 머지않은 시기에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통합대상 

2007년 대선 이후, 개혁진영에서는 작은 토론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과실을 평가하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이론토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신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고자 창립한 정당이 바로 “국민참여당”이다. 2010년 9월 15일, 국민참여당 창당을 주도한 유시민 당시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언명했다. 



유시민은 그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또한 “사회자유주의”라고 언급하였다. 유시민은 사회자유주의를 “헌법이 규정한 정치와 경제의 다원주의적·자유주의적 기본질서를 전적으로 승인”하는 가운데 제기되는 개념이라 정의한다. 아울러 사회적 형평과 통합, 각종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타협을 추구하는 사상·이론적·정치적 흐름”이라 일컬었다. 이 역시 진보적 자유주의의 범주라 볼 수 있다. 

자유주의가 과연 진보일 수 있는가? 미국에 의해 주입된 신자유주의는 자본계급의 자유를 위해 약소국의 시장을 개방하는데 앞장선다. 뉴라이트 계열이 떠들었던 “자유주의연대”도 기본은 단결투쟁을 중시하는 진보진영의 사상기풍을 반대,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므로, 일반적으로 권력을 반대한다. 권력은 사회구성원을 특정정책, 노선에 따르게 하는 힘이다. 권력자의 통치력과 개인의 자유가 서로 충돌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시민 전 대표는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타협을 추구하는 사상·이론적·정치적 흐름”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내면은 국가의 개입이다. 그런 면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보수진영이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형태가 다르다. 

일례로 참여정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개정하였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유, 국민주권을 억압하는 외세와 기득권층에 맞서 싸워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인 노사모 분들은 이명박 정권의 패악에 맞서 투쟁을 주저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걸림돌은 오히려 책상머리에서 탁상공론만 즐기는 이른바 <입진보>들이다. 불의에 맞서 투쟁하기를 결심한다면 그가 일부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통합진보당에 함께 할 자격은 충분하다. 진보통합을 결심했던 유시민 전 대표의 판단도 전적으로 옳았던 것이다. 

문제는 도덕양심의 실종 

그러나 유시민 전 대표는, 정치적 노선판단은 옳았지만 이를 행하는 방법론이 옳지 못했다. 

유시민 전 대표는 그 정치행보에 있어서 도덕적, 양심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지 못했다. 당의 비례후보 선출을 “총체적 부정 부실”이라 공격하면서도 정작 부정행위자를 색출, 엄벌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도덕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진보정치는 자기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고치는 가운데 남의 잘못을 지적해야 자기활동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고 외부의 분열공작에 맞서 대오를 단결시킬 수 있다. 진보진영에서 머리좋은 사람보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언변을 총동원해 정치적 논리를 제 아무리 새로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인류보편적 가치기준인 도덕양심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자유주의는 기성의 선입견과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활동과 가치에 주목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유주의 이념이 자기 목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덕양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유주의가 도덕, 양심의 기준을 벗어나는 순간, 그가 진보진영에 함께 할 근거는 사라진다. 양심을 버린 자유주의는 우리에게 신자유주의, 뉴라이트 자유주의로 너무나 익숙히 알려져 있다. 

사실 편안하고 안락한 보수진영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회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로 남도록 규제하는 힘의 원천은 바로 도덕양심의 호소 아니겠는가. 

기상천외한 셀프제명 사태도 도덕양심이 실종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가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유시민 전 대표는 또한 “진보적 자유주의”란 명분으로 자기 판단을 최우선적 가치로 내세우는 잘못을 지속하고 있다. 진지함과 겸손함의 미덕이 부족한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12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오찬에서 “저는 사상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입니다. 모든 사상은 소중하지만, 모든 사상은 완결성을 인정할 때 절대주의가 되고 사람에 대한 지배와 속박이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남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완결성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이념이 진보라는 궤에 함께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그것이 사회적 의제를 중시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국민들이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는 행동을 악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발현이라며 극력 반대한다. 

이를테면, 자유주의자들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차별을 반대한다. 이들은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동성애를 옹호한다. 자유주의자들은 통일운동에 당장 관심이 없더라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옹호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사상, 문화, 정서를 소중히 지키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사상, 문화, 정서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이것이 자유주의가 진보진영에 함께 할 수 있는 근본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유시민 전 대표가 제기한 국민의례-민중의례 논란이나 나중에 가세한 애국가 논란은 자유주의적 이념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방식이다. 유시민 대표가 민중의례에 동의할 수 없다 해도 이미 수십만명의 진보인사들은 민중의례를 통해 투쟁의 결의를 다져왔다.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 그것은 “전체”의 이름으로 개별의 활동을 가로막는 전체주의 방식과 같아지고 만다. 

*****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말처럼 자유주의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러나 보혁갈등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분명히 일정한 사회여론을 형성하며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유시민 전 대표를 비롯한 극히 일부 참여계 인사들의 도덕양심에 반하는 행동, 독단적인 행보는 정치적으로 용납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처벌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엉뚱하게 구현한 몇몇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제대로 우뚝 서려면 첫째도 둘째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중요한 대선정국을 앞두고 동료들의 흠결을 탓하며 사퇴를 주장하고, 당을 쪼개고 나가는 행위는 무엇보다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에게 커다란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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