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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군대, 그리고 신의 나라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7. 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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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에 대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된다는 율법의 금지규정을 여러 차례 범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쳐준 일과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을 두둔하신 것은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연히 종교지도자들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난에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응수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모든 법과 제도는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마련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휴머니즘의 대선언으로 받아들입니다.

 

 

1. 국가와 군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면 국가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음을 증언합니다. 특히 이웃나라와 전쟁을 할 때 국가는 신성체가 되었습니다. 국가의 존립과 흥왕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국가가 사람 위에 군림하는 현상을 나타냅니다. 50년 전까지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인민'이라는 말을 우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북에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동무'라는 좋은 말도 잃어버렸습니다.

 

'인민'이라는 말을 '국민'으로 대체하면서, 사람들은 특정 국가조직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마치 국가를 떠난 개인의 존재는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특정 단어의 지속적인 사용은 사물을 그 단어가 암시하는 방향으로 개념화하게 됩니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해서도 "어느 나라 국민인가?"를 따져 묻게 되고, 국가의 등급(?)에 따라 해당 국민의 등급도 정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점점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국가에 예속된 존재로 전락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국민으로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병역의 의무는 신성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감히 '국방의 의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성역에 도전하는 불경죄가 되었습니다.

 

 

2. 군대를 거부하는 젊은이들

 

한 무모한(?) 젊은이가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단순히 입대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폐지되어야 한다며 나체 퍼포먼스까지 벌였고, 급기야 2011년 6월 2일 입영거부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젊은이에게 "양심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지만 양심을 실현하는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며 "헌법이 규정한 국방의 의무는 국가를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 의무이며 국민 전체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분단 상황을 고려할 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의할 이 판결의 문제는, 이런 호국논리를 각 나라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지구마을에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데 있습니다.

 

남북한을 비롯하여 모든 호전적 국가들이 이런 논리로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독일제국이나 일본제국 역시 호국논리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이런 국가 논리에 대항했던 일부 지식인들은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국가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신성체가 된 국가를 위해 사람들, 아니 '국민'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석 외에도 국가의 입대명령을 거부하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국가방위를 위해서라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감옥행을 감수하면서까지 입대를 거부하는 명분입니다.

 

강의석의 경우, 개인으로서의 입대 거부만이 아니라 아예 군대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위까지 벌였다는 점에서 사회의 핀잔과 냉소를 받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그가 학교종교자유를 위해 싸울 때 지지를 보냈던 진보 지식인들조차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그의 언행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만 판단한다면, 저 역시 이 무모한 젊은이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군대를 당장 없앤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앞날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의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꿈을 지구마을의 여러 젊은이들이 함께 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무모한 젊은이들이 그들의 허망한 꿈을 이루겠다고 서로 연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만이 아니라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북한의 젊은이를 비롯하여,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젊은이들이 같은 꿈을 꾸고 서로 연대하여 국제적 시위라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각 나라에 그런 젊은이들이 수백 명, 아니 수십 명씩이라도 나와 서로 연대하며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국가에 예속된 국민'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그냥 사람으로서의 인권과 자유에 대해 지속적으로 담론의 장을 마련하여 시민의식을 일깨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그런다고 군대가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성세대, 즉 젊은이들의 허망한 꿈의 무모함을 질타하던 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정부에 군축방안을 내놓으라고 압력을 가하게 되지 않을까요? 무기를 줄이고 병력 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새로운 '현실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지 않을까요? 진보와 인권을 내세우는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방이 호전적인 국가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이런 방안을 시행하기는 어렵겠지만, 무모한(?) 젊은이들이 서로 연대하여 함께 미친 짓(?)을 벌인다면 동시다발적으로 지구마을 대부분의 국가들이 군축협상 테이블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어쩌면 아주 오랜 옛날에 선각자 이사야가 꾸었던 꿈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서기전 6세기의 위대한 선각자 이사야는 이미 이천오백 년 전에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꾼 꿈의 핵심 내용입니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쟁기)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장 4절, 공동번역)

 

 

4. 현실과 꿈의 만남을 위하여

 

제가 생각해도 강의석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꿈이 비현실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넘어 이상을 꿈꾸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성이 아닐까요? 그들의 꿈이 너무 무모하다면, 기성세대가 그들의 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조율하고 도와줄 수는 없을까요?

 

지금 지구마을에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에 맞서 군사력을 엄청나게 늘리고 있습니다. 그에 맞서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려면 일본과 남북한은 아예 국가전체를 군대화해야 할 판입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동북아 전체가 함께 무한정 군사력을 늘리는 선택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사야의 꿈, 강의석의 꿈을 함께 꾸어야 할까요?

 

남북한 군인의 수를 각각 십만으로 줄이고(이 방안은 오래 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줄곧 제안했던 것입니다), 군축협상으로 국방비를 절반씩만 절약해도 양쪽 경제는 비상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학생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등록금 반값 인하도 즉시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한이 합의한다고 해서 당장 군축을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주변 국가의 막강한 군사력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의석의 꿈이 실현되려면, 중국과 일본과 미국에도 강의석이 나타나야 합니다. 지구마을 전체에 강의석들이 나타나 군대를 없애라고, 핵을 없애라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무기를 없애라고 시위를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 때 사람들은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젊은이들이 무모하고 미친 짓을 한 것인지,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지구마을을 사랑하며 무엇보다 사람과 세상을 사랑한 것인지.

 

강의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이루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가 망상에 사로잡힌 무모한 젊은이로 끝날 지, 사람과 세상을 위해 멋진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될 지는, 또래 젊은이들이, 또한 신의 나라를 꿈꾸는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정토세계의 도래를 염원하는 수많은 종교인들과 양심적인 시민들이, 그의 괴팍한(?) 언행의 내면에 담긴 꿈과 소망을 이해하고 그 꿈을 함께 꿀 것인지 말 것인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 <공동선> 2011년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류상태 ryu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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