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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원 가계부채, 금융시스템과 고용구조에 근본 개혁 필요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3. 3. 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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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볼만한 2013 경제이슈] -5
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핸드폰을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출 관련 광고문자나 자동응답전화에 자주 노출될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빚 권하는 사회"가 십 수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 한국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에서 가계부채가 심각한 경제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어 왔다. 미국의 금융위기도 부동산담보대출의 부실화가 주요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IMF는 본디부터 외국자본 의존이 심각하던 한국에 대하여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완전개방, 금융권 통합과 자본이동 자유화 등의 조치를 강요했다. 이러한 결과 우리은행을 제외한 시중 은행은 모두 외국계 자본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 외국자본을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금융권은 이른바 '선진 금융기법을 활용한 소매금융시대'를 외치며 거래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한편, 소액 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그리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고금리 대부업 등 개인이나 가계를 상대로 한 약탈적 영업에 대거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비정규직 위주로 재편된 고용불안정, 실질소득정체, 영세자영업 증가 등의 현상과 맞물려 가계가 대출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98년 IMF외환위기 당시 전체 금융권 대출의 3분의 1정도만 차지했던 가계 대출이 2001년 불과 3년 만에 51.3%로 절반을 돌파하였고 신용카드 발행건수는 1억장을 돌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은 이를 "평범한 한국 가정을 상대로 한 금융수익 쟁탈전"으로 묘사한 바 있다. 

가계부채문제의 주된 원인이 이와 같은 외국자본 중심의 금융시스템과 고용불안정 구조에 있음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무리하게 대출받은 것이 잘못이라며 개인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외국자본을 중심으로 재편된 금융권이 십여 년간 가계를 상대로 펼친 약탈적인 대출관행에 눈감는 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가계부채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다보니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올 수 없다.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18조 원 '국민행복기금' 조성 정책은 세금을 동원하여 금융권을 가계부채 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심각한 후과를 불러올 수 있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가계부채는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서민 생활 억누르는 가계 부채 

먼저 가계부채가 국내 경제와 서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가계에 빚이 늘면 그만큼 이자 부담이 높아져 가구 소비 생활이 위축된다. 소비가 줄어들면 영세자영업자나 내수관련 중소기업 등이 가장먼저 타격을 받게 된다. 가계 부채는 이와 같은 경로로 경기불황을 가중시킬 수 있다. 

2012년 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의하면, 빚이 있는 전체 가구 중 약 70%가 원금 및 이자 상환 때문에 생계에 많은 부담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80% 가까운 가구가 저축이나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답하였다. 지난 2010년 4분기 이후 국내 소비는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는데, 가계부채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주로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에게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구가 1년 동안 벌어들인 전체 소득 중에서 세금 등을 제외한 실제 처분 가능 소득, 즉 가처분 소득을 100만 원이라 가정할 때 자영업자의 경우 2011년 평균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26만 6000원을, 그리고 소득 최하위 20%가구는 19만 8000원, 다음 하위 20%가구는 22만 8000원을 빚 갚는데 사용하였다(표 1). 가처분소득 대비 빚의 규모도 상당하다. 특히 최하위 20%가구는 가처분소득보다 빚이 두 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사 방법이 다소 바뀌어 직접 비교가 어려운 2012년의 경우도, 자영업자는 가처분소득 100만 원 중 23만 1000원을, 최하위 20%가구는 15만 7000원을 빚 갚는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되어 가계부채가 생활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소득 수준이 낮고 영세한 자영업자일수록 빚 갚는데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은, 이들이 시중 은행의 대출을 받지 못하고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데 있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나 적다보니 생활형편은 어렵지만 오히려 대출조건이 더욱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우스푸어’ 양산한 부동산 담보대출 

중산층 이상 고소득 계층이라고 가계부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저소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입이 많지만 빚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12년 기준 소득 상위 40%에 해당하는 중산층 이상 가구가 전체 가계부채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소득 상위 계층일수록 대출이 쉬운데다, 부동산 투기 바람을 타고 고액 담보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주택담보대출은 2012년 3분기 기준 전체 가계부채 937조 원 중 400조 원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여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보대출인정비율(LTV, Loan To Value ratio)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최고 대출 한도를 정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이 비율은 현재 수도권의 경우 주택 감정가격의 50%, 지방의 경우는 60%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대출 받으려는 지방 사람이 소유한 주택의 공식 감정 가격이 4억 원이라 가정하자. 그러면 이 사람이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담보대출인정비율 60%에 해당하는 2억 4000만 원이다. 만약 주택 가격이 3억 4000만 원으로 떨어지면, 은행의 담보인정 한도도 2억 4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 최초 2억 4000만원을 대출 받은 사람은 대출 만기를 연장할 때 3600만 원을 일시에 상환해야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아파트 가격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근 들어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림 2>를 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36.1포인트를 기록했던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2012년 12월 현재 114.5포인트로, 평균 16% 가량 하락하였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심각했던 강남, 분당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경우는 하락폭이 더욱 커 30% 가량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당장 대출 원금을 갚을 목돈이 없다면, 제2금융권에서 높은 금리를 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들이 이른바 집 가진 빈곤층으로, '하우스 푸어'라 불리는 계층이다. LG경제연구원은 1월 22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하우스 푸어'가 2011년 말을 기준으로 32만 명이나 된다고 추산했다. 

부동산 가격은 당분간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2년 12월 부동산 전문가 105명을 대상으로 '부동산시장 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3%가 2013년 주택가격 추가 하락을 예견했다고 한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 침체의 원인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34.0%), '투자손실을 우려한 주택구매 기피'(30.9%), '젊은 사람들의 소유욕구 저하'(21.3%) 등을 꼽았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현실과 상당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신규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가 한층 강화된 조건에서, 당장 새로 집을 살 계층으로 볼 수 있는 20~40대의 상당수가 고용불안과 취업난 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 '하우스 푸어'가 더 많이 양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계부채, 과연 폭발 위험 없나? 

가계부채가 심각한 경제위기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가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가계부채 문제를 낙관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 거대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의 평가다. 골드만삭스는 2012년 12월,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상환비율(DSR)이 60%를 넘으면서 부동산·금융자산을 모두 팔아도 대출금을 못 갚는 고위험 가계의 비중이 전체 대출가구의 1%를 밑돈다"고 하면서 한국 가계부채를 이른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평가 근거는 한 가구가 모든 자산을 청산해도 빚을 갚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1% 미만임을 밝힌 것으로, 바꿔 말해 투자은행의 입장에서 원금 손실이 없는 경우가 1% 미만이라는 의미다. 이는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 손실 가능성을 평가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월급 중 60%를 빚 갚는데 사용하는 대부분의 가정은 이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하우스 푸어'같은 신세라는 점에서 골드만삭스의 평가는 현실성이 떨어지며, 가계 입장에서 부채문제를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가계의 입장에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상환비율 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012년 12월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7월 기준으로 자기 소득의 20% 이상을 빚 갚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35%에 육박하며, 이들이 보유한 빚의 총액은 전체 가계부채의 70%에 달하고 있다. 자기 소득의 60%이상을 빚 갚는데 사용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100명 중 5명이 넘고, 이들이 보유한 빚도 전체의 30% 가까이나 된다. 이런 상황을 골드만삭스와 같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가계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안이한 상황인식이다. 

정부를 포함한 일각에서도 현재 가계부채 평균 연체율이 아직까지 1~2% 정도로 낮다는 점을 근거로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위기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2002년 카드대란 직전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 역시 2%대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연체율을 근거로 위기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소득층은 점점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 저신용 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소규모 대출상품들의 연체율은 이미 10%대 안팎으로 상승추세에 있다. 일례로 신용등급 5등급 이하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의 소액신용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3.6%를 넘었다. 

또 4대 서민금융 중 하나인 '햇살론'의 연체율은 9.6%, '바꿔드림론'의 연체율은 8.5%이다. 벼랑 끝으로 떠밀린 서민들이 찾게 되는 고금리 대부업체의 연체율은 더욱 심각하다. 대부업 협회에 따르면 2012년 9월 기준 상위 10개 대부업체 평균 연체율은 14.09%로 2011년 9월 8.68%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업계 사상 역대 최고 연체율을 기록한 것이다. 

무주택 서민이 생애 최초로 부동산을 구입할 때 이용하는 '보금자리론'도 부실위험에 처해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2012년 1~11월 취급된 '보금자리론' 약 7조 원 중 4조 원이 담보대출인정비율 60%를 훌쩍 넘겼다. 담보대출인정비율을 초과한 사람들이 원금 상환 압박을 받을 경우 연체율은 급격히 상승하고, 이들이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대부업체로 내몰릴 가능성도 높다. 



최근 가계부채의 부실 가능성이 이와 같이 높아지자 한국은행의 신용위험도 평가지수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그림 3>을 보면 2013년 1분기 가계 신용 위험도가 최근 급등하며 34포인트를 기록하여 2008년 금융위기 때의 25포인트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용위험도가 올라가면 은행에서 대출 만기 연장을 꺼리게 되어 원금 상환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가계부채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002년 카드대란보다 더욱 심각할 수도 

이러한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2년 12월 실시한 가계부채 총액 평균 연체율 추정 결과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경제가 2013년에도 불황에서 회복되지 못하거나 2008년 금융위기 국면과 유사한 충격이 가해져 가계 소득이 5% 줄고, 금리는 1%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 실시한 추정 실험에서, 연체율이 6%로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은행이 아닌 대부업체나 카드사 등 금융 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의 연체 발생 빈도는 13%까지 치솟았다. 이 사람들은 앞서 살펴본 바대로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하고 제2금융권으로 떠밀린 저소득층,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이른바 '하우스 푸어' 계층일 것이다. 

평균연체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상황은 대외 경제여건을 고려해도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2013년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세계적인 화폐전쟁과 무역분쟁으로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계부채 문제는 언제든지 경제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다. 

연체율이 13%까지 오르는 상황은 2002년 카드대란과 유사하다. 카드 대란은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신용카드 관련 대출이 1998년 약 10조 원에서 2002년 60조 원까지 6배 폭증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카드 대출 연체율은 위기 직전 2%대에 불과했지만 금융당국이 신규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10~15%까지 수직상승하였고, 더 이상 빚을 빚으로 돌려막을 수 없게 된 372만 명은 이른바 '신용불량자'로 순식간에 전락했다. 경제위기 상황은 한국 경제 전반의 소비를 위축시켰고, 영세자영업자를 중심으로 33만 4000명의 실업자도 발생시켰다. 

2002년 당시는 그나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가 빚으로 소비를 늘리며 호황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한국 경제는 이런 대외경제여건에 힘입어 수출을 통해 위기국면을 벗어나 일정한 회복이 가능했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세계 경제는 2002년과는 반대로 빚을 줄여가는 상황에서 장기 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 따라서 만약 이 같은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강도는 2002년 카드대란을 뛰어넘는 혹심한 민생대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불황의 고통은 은행과 부자들에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주택담보대출의 늪에 빠진 중산층들의 몫이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한가하게 '국민행복기금'이란 이름으로 세금을 동원하여 금융권의 이익만 보호하려 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IMF 이후 지난 십여 년간의 금융 개방, 자유화 정책을 면밀히 평가하여 외국자본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금융권의 약탈적인 대출관행을 근절하고 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금융권의 책임을 바탕으로 파산 직전에 내몰린 수많은 가계 구성원들이 채무를 탕감할 수 있는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빚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공멸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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