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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정당운동의 포로된 진보진영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12. 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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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선 패배의 요인과 진보운동진영의 과제


박경순 (정치평론가)


남 탓이 아닌 자기 성찰이 필요할 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패배였다.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지배적(12월 9일 발표된 KSOI의 여론 조자에 따르면 응답자의 52.5%가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게 낫다’고 답했고,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는 게 낫다’고 답한 응답자는 39.9%)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것도 정권 교체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졌고, 안철수의 적극적인 지지지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선거승리의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보고 승리를 낙관했던 진보개혁진영과 정권교체를 열망하던 국민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선거패배의 원인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가들은 자기 파괴적이거나 남 탓만 하고 있다. ‘보수화된 50대의 역습’이 대선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가 가장 대표적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고, 그러한 보수화된 세대가 20,30대보다 인구 구성상 다수를 점하게 되어 보수 정당을 지지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출구조사 결과 50대 62.5%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그렇다면 50대 전체에서 ‘새누리당 재집권’이 48.1%, ‘정권교체’가 42.9%로 집계된 9월 23일 발표 KSOI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에 빠지게 되면 미래가 없는 허무주의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으로 되는 경향은 일반적이지만, 그 폭과 정도는 정치적 환경과 정치적 주체의 투쟁 결과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이와 같은 50대 역습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와는 달리 남 탓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정희 역효과론이다. 특히 보수진영에서 제기되었던 이러한 주장을 진보개혁진영의 일부에서도 기정사실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이정희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역동성을 불어 넣어주는 촉매제역할을 톡톡히 했고, 범야권 표 결집에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다. 그에 반해 보수층 결집의 계기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범야권 표 결집에 끼친 공헌과 보수층 결집에 미친 영향을 계량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현재의 여론조사는 부정적 측면만을 드러내는 여론조사로서 그 의도가 악의적이다.

이처럼 허무적이거나 남 탓만 하는 대선 평가는 생산적이지도 않다. 자기 파괴적이다. 허무주의만을 부추긴다. 이러한 남 탓하는 대선 평가는 여기서 그치자. 이제는 각 집단과 개인이 자기 성찰과 평가를 중심으로 대선평가를 해야 할 때이다.

정치적 역동성을 살리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

한국 사회에서 대선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정치적 대결장이다. 87년 민중항쟁이후 대통령 직선제 실시 등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것과 새 것 사이의 투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으며, 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에는 낡은 분단체제를 옹호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를 타파하고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한반도 체제를 수립하려는 세력사이에 사활적인 쟁투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동성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선은 양 세력사이의 총체적 전면적 대결전이며,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동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6.15공동선언 이후 한국 사회는 세 개의 전선에서 낡은 것과 새 것 사이에 치열한 쟁투가  벌어져 왔다. 신자유주의 확대로 인해 발생한 ‘민생파탄과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경제투쟁전선, 구태정치 청산과 새 정치 실현으로 대표되는 정치제도 개혁 투쟁 전선, ‘전쟁이냐 평화냐’, ‘대결이냐 화해 협력이냐’로 대표되는 자주통일 투쟁 전선이라는 3대 투쟁전선이 바로 그것이다. 즉 민생문제, 민주주의 문제, 남북관계 문제가 한국 정치를 관통하는 세 축이며, 이 세 전선에서 치열한 계급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세 축을 형성하고 있는 전선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 국민 대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쪽이 각종 선거에서 승리해 왔다.

이번 대선은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양 세력사이의 대결이 치열했고, 양 세력 모두에게 사활적으로 다가왔다. 친미 보수 세력들은 이번 대선에서 권력을 놓치게 되면 영영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휩싸였고, 진보개혁세력들은 MB 정권 5년이 다시 연장된다면 끔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휩싸여 양 세력 모두 생사존망을 다투는 선거로 접근했다. 그 결과 양 세력 모두 각각 자기 진영의 단결이야말로 승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봤고, 각각 보수 세력의 대단결, 진보개혁세력의 대단결을 추진해왔다. 특히 진보개혁세력은 야권 후보 단일화=대선 승리로 보고,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우여곡절 끝에 야권 후보 단일화가 완성되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진보개혁진영은 승리의 예감에 사로잡혔고,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결코 승리의 보증수표가 아니라, 단순한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야권 후보 단일화 없이 진보개혁세력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야권 승리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승리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야권 후보단일화 +α(알파)’가 필요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광범한 국민 대중들을 결집시키고 단결시키고 야권 단일후보에 표를 던지게끔 만들 수 있는 α(알파)에 대한 그릇된 판단, 실천이 야권의 패배를 자초했고, 50대의 역습을 자초했으며, 박근혜의 당선을 허용했다.

진보개혁진영, 문재인 후보 측은 α(알파)로 정권교체, 경제민주화, 새 정치, 화해 협력적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그다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함으로서 선거전에서 패배를 자초했다. 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을까? 그러한 선거 캠페인들이 박근혜 후보와의 계급적 차별성(정치적 변별력)을 강하게 드러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보다 주효하게는 국민대중의 정치적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친미 보수세력들은 조직선거를 통해 표를 결집한다면 진보개혁세력들은 바람선거를 통해 대중들의 정치적 감수성과 각성을 불러일으켜 표를 결집했다. 강한 바람이 불어야 야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선거승리의 하나의 공식처럼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어떤 바람이 불었던가? 불었다면 ‘이정희 바람’ 정도가 그나마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람이란 일과성 흐름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었던 대중들의 정치적 역동성의 표현이며, 계급적 분노의 폭발이다. 대중들은 바람을 통해 선거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 주체로 서며, 국민대중이 선거의 주인으로 설 때 야권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바로 이러한 대중들의 정치적 역동성을 살려내 국민대중 주체의 선거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근본원인이다.

진보진영의 ‘분열과 투쟁력 약화’가 문제의 뿌리이다

선거판에서 바람은 어떻게 부는가? 첫째는 후보가 갖는 폭발력(정치적 지도력, 비전 제시능력, 새로운 쟁점 주도력)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이다. 이것은 71년 김대중 전대통령과 박정희의 대결에서 ‘평화통일론과 예비군제 폐지 공약’을 들고 나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후보가 시대와 국민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혁신적인 선거 기치를 들고 나온다면 그것 자체가 대중들의 잠재된 정치적 역동성을 불러일으켜 선거판을 주도할 수 있다. 둘째는 대중투쟁으로 바람이 부는 경우이다. 87년 6월 항쟁, 2002년 ‘효선 미순 촛불항쟁’ 등 강력한 대중정치투쟁 전선을 만들고 완강한 투쟁을 펼쳐, 이것이 선거판의 중심적 흐름을 형성하고, 이 투쟁력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수진영을 분열시키고, 그 아성을 분쇄하게 될 때, 선거판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선거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충분조건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선거는 이 두 측면에서 모두 낙제점 이하였다. 문재인후보가 폭발력이 없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였다. 문제는 그것을 보완해 대중들의 정치적 역동성을 폭발시킬 대중적 항쟁(정치투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뼈아픈 측면이다. 투쟁 없는 선거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운동의 기본 공식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투쟁도 하지 않은 채 선거승리를 기대했었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국민대중들은 정치적 경제적 분노 폭발 일보직전이었고, 이명박 정부의 신뢰도는 20%대에 머물렀고, 정권교체 여론은 팽배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투쟁이 없었을까? 왜 투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점이 이번 대선의 핵심 평가지점이다.

전통적으로 투쟁은 진보진영의 몫이었다. 진보진영의 투쟁과 개혁세력의 표가 결합되어 역대 선거에서 진보개혁세력(야권)이 이겼고, 이 힘으로 역사를 전진시켜왔다. 그런데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진보진영의 투쟁이 거의 전무했다. 바로 이점이 이번 대선 패배의 핵심요인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게도 역시 일차적 책임을 져야할 민주당 못지않게 커다란 대선 패배 책임이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진보진영 책임론’의 견지에서 대선을 평가해야한다. 그래야 자기 성찰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실천적 과제가 명확해 진다.

진보진영이 투쟁을 하지 못한 데는 가깝게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보다 구조적으로 보면 ‘진보진영 투쟁력의 구조적 약화’가 근본원인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둘러싼 책임공방은 뒤로 미루자.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바는 이 사태로 인해 진보운동진영이 산산이 분해되었고, 아무런 투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대선국면을 무기력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당이 쪼개지고, 진보연대와 민주노총이 무력화되었다. 분열된 진보운동진영은 대선 국면에서 아무런 정치적 역할도 하지 못했고, 대중투쟁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무기력하게 대선 국면을 맞았고, 무기력하게 대선시기를 보냈다. 바로 이점이 대중들의 정치적 역동성을 불러일으켜 내지 못한 직접적 원인으로 되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보다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은 진보운동 진영이 어느 때 부터인가 ‘합법정당운동의 포로’가 되었다는 점이다. 변혁적인 대중 의식화 조직화 대중투쟁에 힘을 쏟기 보다는 합법정당운동과 선거 승리에 힘을 쏟아 왔다. 물론 합법정당운동과 선거 승리에 힘을 집중한 것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투쟁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했다. 대중투쟁에 복무하고, 강화시키는 전략적 노선과 방침을 세우고 완강하게 실천해야 했다. 그런데 선거활동과 합법정당운동에 매몰되어, 각 계급 계층 대중조직과 전선조직을 강화하고, 대중의식화를 확대발전시키고, 대중 투쟁력을 확대하는 데에는 매우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대중 조직과 대중 투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선거를 위한 대중투쟁인가’ 아니면 ‘대중투쟁을 위한 선거투쟁’인가는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디에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무엇이 무엇에 복무하도록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류가 있었다.

진보운동진영을 바로 세우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합법정당운동의 포로가 되었다는 견해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가 발생하자 모든 대중단체와 조직들이 무기력해졌다는 것이 무엇을 반증하는가는 명백하다. 합법정당운동의 발전이 대중 단체와 조직의 강화발전에 복무하고, 대중단체의 통일 단결에 복무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약에 진보정당운동이 대중단체와 대중투쟁 강화에 올바르게 복무했더라면 각 계급계층과 통일전선운동이 확대 발전되면서 통합진보당 사태가 발생했을 때 통합진보당을 지지 엄호했거나, 그렇게는 하지 못했더라도 통합진보당을 대신해서 대중 투쟁을 활발하게 벌임으로서 대중투쟁의 공백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과연 지금까지 진보정당운동이 통일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진보연대를 비롯한 전선조직,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단체의 강화발전과 통일단결의 확대발전을 위해 어떤 구체적 노력과 기여를 했는가? 그 성과는 과연 무엇인가?

합법정당운동의 포로에서 벗어나 선거가 아니라 대중투쟁과 대중단체의 강화발전에 복무하는 진보정당운동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이번 대선 패배로부터 진보운동진영이 찾아야할 실천적 교훈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이를 총체적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 출처 :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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