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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7. 2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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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6월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이 끝났다. 집권여당인 신민주당(129석)이 제1당이 되었다. 20일에는 신민주당과 기존 연정파트너인 사회당 그리고 민주좌파가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타결했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26.89%의 득표를 기록하며 1당이 되는데는 실패했지만 2당으로 급부상했다. 

이번 그리스 선거의 핵심 쟁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긴축정책과 구제금융 프로그램이었다. 유권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긴축정책에 찬성하는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으로 갈렸다. 근소한 차이로 긴축을 찬성하는 신민주당이 1당이 되었다. 



물론 이번 선거결과가 그리스 민중들이 긴축을 찬성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선거기간 내내 금융투기 세력들과 그 이익을 대변하는 각국 정부들은 시리자가 1당이 되면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에서 탈퇴하고 그로인해 큰 충격이 올 것처럼 불안심리를 조장했다. 그럼에도 투표로 결정되는 250석 중 긴축정책을 찬성하던 신민주당과 사회당은 112석, 그에 반대했던 시리자 등 나머지 야당은 138석을 얻었다. 게다가 그리스 국민들이 긴축반대 민심이 크다보니 신민주당도 구제금융 재협상을 해서 긴축안을 어느정도 조절하겠다고 공약할 정도였다. 

그리스 선거를 지켜보던 세계적인 투기 자본들은 긴축을 찬성하는 신민주당이 승리하자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불확실성이란 투기세력들 입장에서의 불확실성이지만 말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서술하겠다). 한국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계속 빠져나가던 외국자본은 다시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는 1800선을 회복하였고, 원/달러 환율은 1150원대로 내려왔다(원화가치 강세). 

이제 좀 진정될까? 

그렇다면 이제 유럽위기는 진정되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유럽의 경제위기는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페인이 이미 위기국면에 접어들었고, 이탈리아도 휘청거리고 있다. 프랑스 역시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당장에 그리스 총선 이후 19일(현지시간)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7.22%로 사상최고치로 폭등했다. 국채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정부가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것으로 해당 국가의 여건이 그만큼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7%라는 금리는 재정위기 국가가 전면 구제금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아주 높은 수준의 금리이다. 현재 스페인은 부실은행에 투입하는 목적으로 10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을 예정인데, 스페인 중앙은행은 자국 은행의 부실채권 비중이 20년 이래 최고 수준이라며 10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은 턱없이 부족할 것임을 시사했다. 스페인 위기의 진앙지라 할 수 있는 부동산 부문의 거품이 아직도 꺼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역시 긴축정책을 찬성하는 신민주당이 승리를 했다고 해서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의 유럽재정위기는 결코 긴축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와 재정위기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자니 국가 빚이 너무 많고, 긴축정책을 펴자니 경기가 둔화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긴축을 강조하게 되면 시중에 풀린 돈이 회수되고 그만큼 경기는 더욱 침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긴축은 정리해고와 각종 사회복지 혜택 삭감으로 이어져 민중들에게는 고통의 과정이다.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당선된 것은 이러한 유럽지역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더군다나 장기적으로는, 이번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에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는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란-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잠시 논외로 둔다면-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경제여건이 다른 나라들이 공동통화를 사용함에 따른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환율은 경기에 따라 변하며 경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IMF당시 경기가 급락하고 급격히 외국자본이 이탈하면서 원화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졌다(원/달러 환율 상승).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싼 비용으로 관광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경기회복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고, 다시 외화를 벌어들이면 원화가치가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우 공통된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어 그리스 경제여건에 맞게 통화가치가 조정되지 않는다. 그리스 등과 같이 극심한 위기에 내몰린 국가들도 있지만 독일처럼 수출의 힘으로 경기가 그나마 괜찮은 나라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로존 국가들이 공동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재정이나 정치적 통합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재정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경우 미국은 어떻게든 캘리포니아주가 파산하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그리스가 어렵다고 해도 여력이 되는 독일 등이 그리스를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가 어려운데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나”는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국가들은 둘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해 문제해결의 길로 나가야 한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통화통합을 넘어 재정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에 2개의 선택지가 있다며 “하나는 그리스의 질서 있는 유로존 탈퇴를 위해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고, 90년대 독일통일 이후 동독을 지원했던 것처럼 남유럽 국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에는 둘 다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유로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독일 등은 이에 반대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로화 사용의 최대 수혜국은 독일, 프랑스이기 때문이다(통화가치가 저평가되면서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 재정통합의 길로 나아간다는것 역시 요원해 보인다. 재정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공동 정부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인데 정치적, 문화적 장벽들이 아직 너무나 크다. 또한 이러한 방향의 정책들(예를 들어 유로존차원의 채권 발행, 각국의 은행감독권 등을 유로존으로 이양하는 방안 등)은 독일이 비용을 많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위기의 국면들이 지속될 것이다. 

그리스 총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그렇다면 이번 그리스 총선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그리스의 이번 총선은 금융 투기세력들에 대한 대책과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적으로 금융 투기세력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정부들은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당선되면 긴축을 반대하고 유로존을 탈퇴해 그리스와 세계경제를 더 큰 충격으로 몰아갈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시리자가 선거에서 이기면 유로존 탈퇴라는 핵폭탄 테러로 독일을 위협하면서 공멸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할 것”(토머스 라이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 “시리자의 승리는 ‘그렉시트(Greece+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것”(데스먼드 래크만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위원) 등과 같은 발언들이 나왔는데 이는 비단 미국 학자들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로존과 금융투기자본들의 인식이다. 

그렇다면 금융투기자본들이 이렇게 긴축 반대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대로 긴축을 한다고 해서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그들이 가장 거부감을 보였던 말은 급진좌파연합을 이끄는 치프라스가 “그리스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부채상환도 없다”고 언급했던 것일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그리스에게 빌려준 돈을 제대로 돌려받는 것과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의 가치를 유지 혹은 증대시키는 것이다. “긴축을 해서, 즉 사회복지지출을 줄이고 노동자들도 해고하고, 공기업 등도 처분해서 우리가 빌려준 돈을 갚을 여력을 만들어라”는 것이 그들 요구의 본질이다. 긴축이 필요한 것은 금융투기세력이지 그리스 민중들이 아니다(물론 국가차원에서의 부채관리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금융투기자본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려 할 때 혹은 우리가 한미FTA를 폐기한다던지, 재벌해체를 위한 정책들을 펴 나갈 때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투기자본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국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치력과 위와 같은 투기자본들의 흔들기에도 버텨나갈 수 있는 경제적인 정책과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유로존에 대해 일정정도 존재했던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핵심적 과제 중 하나는 미국 중심의 일극적 패권질서를 전환 혹은 해체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막대한 군사력과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라는 힘으로 세계적인 패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로화의 등장은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주목되었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보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데도 경제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달러화를 대체할만한 안정적인 통화가 없음에 기인한다는 인식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유로화는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로 보이지 않는다. 유럽자체가 향후 안정적인 경제상황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다, 이번 그리스 위기를 보면서 그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라 함은 앞서 언급했던 경제적 규모가 다른 나라들이 공동통화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지금은 독일과 같은 통화저평가의 이익(독일 마르크화를 사용할 때보다 유로화를 사용하면 수출에 훨씬 유리)을 누리는 나라들이 그리스와 같이 통화고평가로 고통받고 있는 국가들을 착취하는 체제가 되어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남미의 통화동맹, 중국 위안화의 부상, 원유 생산국들의 달러화 대체 움직임 등일 것이다. 

셋째, 세계적으로 민중들의 투쟁과 요구들은 더욱 격렬해 질 것이다. 현재 세계경제는 경기를 부양해야 하고 재정위기로 인해 부채를 축소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따라서 세계경제는 침체국면에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고 긴축에 대한 압력들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그리스만 보더라도 민중들은 긴축으로 인한 사회복지 혜택 축소와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 등의 이중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등에서 보여지듯이 이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질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세계적 안목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시기다. 

세계는 대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 6월 말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교양지 <새세대>에 기고한 글 입니다.


* 출처 : 우리사회연구소 http://urisocie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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