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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종북’은 없습니다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6. 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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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소동이 한창입니다. 국회에서도 ‘종북’, 통합진보당에서도 ‘종북’,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종북’. 대통령, 새누리당, 검찰, 국방부는 ‘종북’세력 척결에 거품 물고 나섭니다.


6.15 공동선언 12돌을 앞두고 벌어지는 ‘종북’소동이 안타깝습니다. 분단 이후 ‘종북’소동에 그렇게 놀아났으면서도 또 말리고 있는 진보개혁진영의 일부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가 무슨 운동, 무슨 정치를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무지도 드러나고, 전 방위에서 달려드는 색깔론 공세에 움츠러드는 장면들도 목격됩니다.


‘종북’이란 건, 존재 자체가 불가합니다. ‘종’이란 수사부터가 진보운동을 하는 이들에겐 모욕적입니다.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만 있더라도 ‘종’과는 상종할 수가 없습니다. 집회 하나를 하려고 해도 정세를 토론하고 구호를 토론하고 방식을 토론하는데, 어디에 ‘종’자를 갖다 붙일 수 있습니까.


‘종북’은커녕 ‘친북’과 ‘연북’만 해도 이 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마녀사냥이 몰아치는데, ‘종북’을 해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종북’의 낙인을 찍으려면, 왜 그런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종북’은 진보의 본성상 불가하지만, ‘종일’과 ‘종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진보운동과는 다르게 외세에 결탁한 자들은 ‘복종’속에서 얻는 것이 무한합니다. 재물도 얻고, 권좌도 얻으려면 무조건 ‘종’을 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감시와 처벌도 본성으로 되는 집단입니다.



종북은 없지만 통일운동의 성격상, 남북이 일치된 목표나 과제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언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연북’, ‘친북’을 지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연북, 친북’과 ‘종북’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3.8선을 베고 죽겠다며 남북협상을 주도하다가 암살당한 김구 선생님,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가 간첩으로 몰려서 사법살인을 당했던 진보당 조봉암 당수를 우리는 ‘연북연공’주의자라고 합니다. ‘종북’주의자가 아닙니다.


89년 ‘불법’ 방북을 결행하고 김일성 전 주석과 회담을 한 문익환 목사님은 또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김정일장군님’이라는 호칭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던 정주영 회장을 ‘종북’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북한 지도자에 대해 ‘예의가 바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북한 인민에 대해 ‘위대하다’고 방명록에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어떻게 볼까요. 김정일 위원장이 ‘솔직하다. 약속을 잘 지킨다’고 했던 새누리당의 박근혜는 또 어떻게?


저희 부부도 수구보수세력들에겐 ‘종북세력’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낙인 찍혀 있습니다. 부부 감옥살이가 도합 십년입니다. 수배생활이 또 십년입니다. ‘종북’을 위해서? 그럴 수 없습니다. 자주통일에 대한 신념 없이는 하루도 편히 지내기 어려운 날들이었습니다.


‘종북’소동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 충실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념대결 자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북녘 3000만 동포들이 사회주의자, 주사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상과 제도를 적대시하고 어떻게 평화통일을 입에 담을 수 있습니까.


국제정세의 변화와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최대 무역상대국인 이웃나라 중국이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좌빨’ 정권입니다. 서방지역의 프랑스에서도 ‘좌빨’ 정권이 세워졌습니다. ‘빨갱이’ ‘좌빨’ 같이 이념대결을 부채질하는 용어들이 버젓이 사용돼서는 안 되는 시대입니다.



철 지난 ‘종북’ 타령이 왜 다시 나타났는지도 냉정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정희가 정치판에 있으면 절대 안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석기, 김재연이 국회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야권진영에서 제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북’이 나왔습니다.


이정희, 이석기, 김재연, 당권파, 민노당계, 통합진보당. 수순이 뻔합니다. 색깔론과 도덕성 시비는 보수의 오랜 공격방식입니다. 그 중에서도 ‘종북’소동은 사실상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전면전이라 해야 합니다. ‘종북 척결’을 위해서 수구보수세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맞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내부 분란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입니다. 오직 당권을 잡기 위해서 당도 망치고, 동지도 버리고, 양심도 쓰레기통에 쳐 박은 일부세력이 전선을 긋고 싸우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부 운영문제로 촉발된 분란이 당의 정체성까지 뒤흔들고 있습니다.


당 내부에도 ‘종북’소동에 편승하는 일부 세력이 있습니다. ‘종북’이라는 수사를 조중동에 갖다 바친 조승수씨는 ‘분단현실에 기인한 기형적 진보’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기존 당 노선을 재검토 한다며 ‘진보시즌2’라는 말도 나옵니다. 다양성 강화가 자주통일이라는 기본노선의 훼손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북’에 대한 입장도 우리 당에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이행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라는 강령에 부합하는 입장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연북, 친북’노선까지 당내 정쟁에 이용한다면 통일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의 운명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탄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차분히 보면 내부 분란의 본질이 보입니다. 기회주의, 공명심, 출세주의자들의 횡포가 주된 원인입니다. 진보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껍데기, 쓰레기들입니다. 그것들이 걸러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수구보수세력의 통합진보당 죽이기 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에 떨며 초조한 것은 그들입니다. 진보는 죽지 않습니다. 이미 시도된 색깔론과 북풍에 국민들 대응은 지혜롭고 단호했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여론은 일시적으로 만들 순 있지만 민심은 다릅니다. 우리가 몇 년간 놀랍게 경험한 진보지향적 민심은 하루이틀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장구한 세월의 탄압을 이겨내면서 더 단단하고 더 넓게 형성된 민심을 누가 감히 농락하겠습니까.


‘종북’소동의 끝은 비참할 것입니다. 이에 편승한 진보 내 ‘껍데기’들도 민심에 빠르게 묻혀갈 것입니다. 이미 민심은 광풍과 먹구름을 걷어내고 이성을 빠르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시대가 역동적입니다. 우리는 가던 길을 재촉하면 됩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당당하게 가면 됩니다. 갑시다.


2012.6.1.윤기진


* 출처 : 새사회 http://www.newssh.net/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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