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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내일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1. 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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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연구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속보가 온 세계에 타전되고 있다. 북한 사회 전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눈물로 추모하는 듯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입장이 어떠하건 간에 그가 사회주의 정치사상에 입각한 북한의 지도자였으며 북-미 핵대결로 동북아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데 대해선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동북아는 커다란 충격 속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SBS는 한국 증시가 12월 19일 정오, 속보가 전해지자 불과 5분도 안 돼 주가지수가 90포인트 가까이 급전직하했고,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하였다. 코스닥도 주가가 5% 넘게 빠지며 477.61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185원까지 치솟았다가 16.2원 상승한 1174.8원에 마감됐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내일에 대해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향후 정세흐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평양을 주목해야 한다. 

일관될 북한의 정치노선 

세계의 관심은 김정은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모아지고 있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향후 정치를 예측하려면, 역으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는 김일성 주석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0년대에 이미 조선노동당 전반에 김일성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였으며 1982년에는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김일성 주석의 사상과 이론을 주체사상으로 체계화, 정식화하였다고 밝힌다. 

소련이 패망하고 동구권 국가들이 연이어 붕괴하던 1990년대의 정황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등 다수의 논문을 통해 사회주의를 지속할 것을 선언하며 개혁개방으로 대변되는 수정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미국과 대결을 마다하지 않았다. 소련붕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중시한 점을 놓고 혹자는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대립시키지만 북한당국은 선군정치의 뿌리가 되는 군중시사상도 김일성 주석의 정치에서 찾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서거 국면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제시하며 북한사회를 김일성 주석의 사상과 이념으로 결속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저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는 정치를 펼쳐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반제, 반미노선으로 워싱턴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축배를 들 수 없었다. 북-미는 1994년의 한반도 전쟁위기를 겪으며 심각하게 대립하였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지하핵시험과 2009년 5월 25일, 2차 지하핵시험을 연이어 단행하며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 미국 중심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하였으며 2009년 4월 5일에는 우주운반로켓 “은하 2호”를 발사,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가능성을 높이며 미국과 대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노선이 김일성 주석과 같은 것은 북한이 유일사상체계에 입각한 정치를 펴기 때문이다. 북한 유일사상체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김일성 주석이며 북한은 김일성 주석을 가리켜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라 칭한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령의 후계자”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규정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러하였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승인한 후계자인 김정은 부위원장 역시 사회주의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부위원장도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입각한 남북통일”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노선을 유훈으로 제시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계승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은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성급한 북한 불안정론 

일부 평론가들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아직 30세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을 주장한다. 러시아의 게오르기 톨로라야 한국연구소장은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김정은 부위원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등이 함께 북한을 이끌어 가는 집단지도체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부위원장을 지도자로 내세우되 내용적으론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리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이른바 "후견인"이 떠받치는 집단 지도체제가 될 확률이 높다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북한의 지난 정치행적과 비교할 때 아무런 근거가 없다. 북한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12년에 태어난 김일성 주석은 10대에 이미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21세에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다고 하며 34세가 되던 1945년에 조선공산당 북조선위원회를 창건하며 북한을 실질적으로 이끌기 시작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항일독립운동을 함께하였다는 북한의 항일혁명 1세대들의 손에서 성장하였으며 9세의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조선인민군을 이끌었던 김일성 수상의 작전지휘를 옆에서 지켜보며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를 수행한다. 

북한은 “유일사상체계”에 기반하므로 원래 “집단지도체제”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2010년 9월 28일, 조선노동당대표자대회를 통해 후계구도를 조선노동당 차원에서 이미 확정지어 놓았다. 이는 북한의 최근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12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고 표현한 것이다. 

변화없는 대외정치노선 

당대표자회의 결의대로, 김정은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전면에 나섰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대외정치노선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맞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노선은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한 반제, 반미노선이다. FTA를 비롯한 자유무역이 세계를 휩쓰는 와중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국과 대결하는 북한의 모습은 세계인들의 눈에 충격적이다. 북한은 사실 미국과 전면전쟁도, 냉전도 치렀으며 무역제재도 겪어보고 6자회담이라는 외교전도 벌였다. 사상이론논쟁, 정보전, 문화침투 등 미국과 안 해본 대결을 꼽기 힘들 정도로 북한은 지금껏 초강성의 반미국가로 꼽혀왔으며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험담까지 듣기도 하였다. 

그 길에서 북한은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칭하는 90년대 경제난을 극복해야 했으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도 맞서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닉슨과 포드, 카터 정권을 상대하였으며 레이건, 부시, 클린턴, 조지 H 부시, 오바마 등 총 8명의 미국대통령과 대치해 결국에는 미국을 대화로 불러내었다. 미국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즈에 가장 많이 등장한 한글 이름은 놀랍게도 “김일성”과 더불어 “김정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한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선언에 서명하며 남북교류를 추진하였다. 1998년 금강산 관광 사업도 북한의 정치체제를 고려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인이 있은 것으로 보아야 맞다. 2000년 8월 현대아산(주)과 북한 아태 평화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간 체결된 「개성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검토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2년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하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입각한 남북통일을 이후 북한의 전략적 방침으로 제시하는 등 국가의 중요 노선과 방침을 사전에 이미 모두 정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북미관계와 6자회담, 남북관계는 중단없이 발전될 수밖에 없다. 

업무방식도 이어받을 김정은 부위원장 

김정은 부위원장은 정치방식에 있어서도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 정치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살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북한 지도체제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달리는 집무열차 안에서 심근경색이 원인이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접하면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그리도 일순간에 유명을 달리한다는 것에 북한주민들은 물론이며 남측국민들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북한당국은 원인을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라고 밝혔다.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월 10일에만도 함경남도에 있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 급수침전지,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분공장, 신흥산화학공장, 함흥편직공장, 흥남구두공장, 성천강수출품출하사업소, 함흥시 회상지구에 새로 건설된 채소온실 등 7개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였다고 한다. 12월 13일에는 평양방어사령부로 알려진 조선인민군 제966대연합부대 화력타격훈련을 현지지도하였으며 12월 15일에는 평양에 있는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과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현지지도하였다고 한다. 

12월 17일, 인터넷 언론 뉴스앤은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진 원인에 대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온 것을 꼽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하루걸러 하루 대외활동을 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을 강행해왔다.”고 보도하였다. 

한국경제 신문은 2007년 7월 8일, “이른 아침부터 해 저무는 저녁까지 현지지도 길을 이어가시고 사람들이 깊이 잠든 새벽 2시, 3시가 넘도록 집무를 보시는 우리 장군님‥”이라고 전한 연형묵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관련한 글을 보도하였다. 1988년부터 13년 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했다는 후지모토 겐지는 “장군이 부하 참모들과 초대소에 가서 휴식을 취할 때도 엄청난 분량의 서류가 팩시밀리로 날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겐 영화를 보라고 하고는 슬쩍 빠져나와 팩스로 날아온 서류를 하나씩 확인하고 검토하는 등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다”고 기술했다. 

분석가들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지휘봉이 이제 김정은 조선노동당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쥐여졌다고 한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이러한 현지지도 방식에 입각한 정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김정은 부위원장의 정치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과 이념, 방법론에 기초해 표출될 것이라는 점은 내외평론가들의 일치한 지적이다. 

다시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본 정치인들은 친미보수세력의 주장과 달리 평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한 후 "식견있는 지도자"로 평가하였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12월 19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한마디로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호탕함과 예절에 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친미보수정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도 2007년에 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분명한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후 냉전의 시기에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사회주의 북한을 계속 혁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각종 정보가 철저히 통제된 지금 시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성급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되면,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북한주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과연 어떻게 보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12년에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위해 2011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을 중심과제로 제시하였다. 

소련붕괴 이후 사회주의를 이어왔으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마다하지 않고 미국과 대결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의 사상과 정치이념은 호불호를 떠나 김정은 부위원장에 의해 그대로 계승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대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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