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이후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한미 FTA가 통과된 11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료들이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고, 이를 보수언론이 보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최 부장판사를 적극 옹호한 사실이 11월 28일 알려지면서 논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12월 9일, 한미 FTA 재협상 연구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과 관련된 건의문을 판사 166명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에 제출했다. 166명의 판사가 동의한 건의문이 대법원장에게 직접 전달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회지도층 인사인 법원의 부장판사들까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 FTA는 일반적인 자유무역협정과 다르다.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관세를 낮추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통상관련 제도와 틀거리까지를 미국식으로 교체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법주권을 침해당할 한국 법원
한국법원의 판사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며 들고 일어나는 것은 한미 FTA가 한국의 법체계를 뒤흔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FTA 재협상 TF를 건의한 김하늘 부장판사는 “한미 FTA는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경우 우리 정부가 무조건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면서 “이 같은 일반적·포괄적 중재 동의는 (한국정부의) 사법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미 FTA 11.17조에 의하면 “국가는 투자자의 국제중재 회부에 동의하며, 이 동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관할권 등에 대한 서면 동의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미FTA 11.22조 1항에 의하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미 FTA 협정과 적용가능한 국제법에 따라 분쟁을 판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로 발생하는 쟁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담당하는데 이들은 한미 FTA 협정문과 국제법에 의거해 재판을 하므로 한국의 국내법이 무시되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김하늘 부장판사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공정성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 운영하고 총재도 수십년간 미국인이 맡아 온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사무총장 직권으로 가장 중요한 의장중재인을 임명할 수 있어 미국과의 소송에서는 공정한 중재가 어렵다고 우려했다.
외교부는 2010년 말 기준으로 미국 관련 ISD 소송 가운데 미국 기업이 제소한 사건 중 미국의 승소율은 13.9%, 미국 정부가 제소당한 사건에서의 승소율은 40%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김하늘 부장판사는 외교부의 반박도 일축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제소당한 15건 중 승소한 6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은 계류 중이므로 실질적으로 미 정부의 승소율은 100%”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한미 FTA로 인해 한미간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그 문제가 한국이건 미국이건 관계없이 오로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관할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나프타 이행법과 미국-칠레 FTA, 미국-싱가포르 FTA 등을 통해 “어떠한 미합중국 법률과 일치하지 않는 FTA의 그 어떠한 조항 또는 그 적용은 어떠한 미국인에게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무효이다. 미국주의 법률의 조항이나 그 적용이, 미합중국이 제기하는 절차를 제외하고는, FT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떠한 미국인에게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무효로 선언될 수 없다.”고 규정, 사실상 미국인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이러한 구제장치가 없다.
뿐만 아니라 김하늘 판사는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과 역진 방지 조항,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 등의 조항은 법률적인 관점에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며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이 우리나라의 사법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라는 주장에 주목하게 됐다.”고 밝혀 한미 FTA를 광범위하게 재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미 FTA로 악화되는 고용
상황이 이러하니 한미 FTA가 우리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리란 견해가 상당하다. 특히 청년, 대학생 계층이 민감한 고용시장이 어려워질 소지가 다분하다.
한미 FTA로 고용시장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12월 5일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한미FTA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한미FTA 최대 수혜자 현대차, 과연 그런가’란 글에서 “미국 판매 완성차 중 현지 생산비중은 2004년 0%에서 올 9월 69.4%까지 늘었다”며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의 수출물량 감소율은 연평균 6.8%에 이른다”고 했다. 한미 FTA의 가장 큰 수혜자로 알려진 현대자동차도 실익이 별로 없는 것이다.
반면 다양한 미국계 기업들은 한국시장에 들어와 한국의 서비스 시장을 점유할 가능이 매우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보고서 '한-EU의 서비스교역 동향과 한-EU FTA에 대한 시사점'을 보면, 한-EU FTA 이후 한국에 대한 유럽연합의 서비스 수출은 연평균 30%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비스 수지 적자 규모는 2004년 80억5000만달러에서 2007년 197억 7000만달러로 급증했다. 연구원은 "한국 서비스산업의 생산력은 유럽연합 평균의 2/3 수준"이라며 "금융, 사업서비스, 특허권 분야 등에서 유럽 업체의 시장 진출이 늘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 미국계 서비스업이 두드러지게 진출하면 청년들의 취업도 외국계 기업의 비중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반길 일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의 청년실업을 더욱 큰 폭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애당초 한미 FTA가 발효된다고 해도 채용을 늘이지 않을 입장이었다. 지난 2007년, 인사취업전문기업 인크루트가 업종별 매출 10대 기업, 총 130개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한미 FTA로 인한 채용변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한 103개 기업의 91.3%(94개사)가 향후 한미 FTA로 인한 채용규모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반해 채용을 늘일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8개사(7.8%)에 불과했고, 줄이겠다는 곳은 1개사(1.0%)에 머물렀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대기업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관세를 줄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공장을 짓는 등 이미 대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라 이번 한미 FTA가 발효된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한미 FTA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 예상된다. 2011년 8월 6일, 한국개발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은 한미 FTA로 인한 국내총생산, GDP 증가 효과가 지난 2007년 예상치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대미 흑자 규모의 경우 종전에는 FTA가 발효된 뒤 15년 동안 연평균 4억 2천만 달러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지만 이번에는 1억 4천만 달러로 축소됐다. 농수산업 부문은 앞으로 15년간 연평균 8천 445억 원의 생산 감소가 예상돼 지난 2007년 분석 당시의 6천 979억 원보다 피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경제부문의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고용 기대효과보다 국내 중소기업, 자영업의 사업축소, 도산으로 고용축소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미국계 기업에서 안정된 수익과 근무여건을 보장받으며 일한다는 것은 서울대 등 소위 일류급 대학의 우등생에게나 해당되는 일일 뿐 국내 일반대학 졸업생들이 외국계 기업의 취업을 꿈꾸는 것은 그림의 떡을 보는 것과 같다. 최상층의 우등생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중소기업이나 일반 서비스업에 취업해야 하는데 이들 직장은 한미 FTA로 고용이 증대되기는커녕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이 예견되는 분야이다. 결국 청년들의 취업은 더 어려우며 하늘의 별따기라는 취업의 문을 들어가도 고용여건은 이전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EU FTA의 경우 GDP 증가가 3.0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미 FTA는 1.28%에 그칠 것이며, 후생증가는 한 EU FTA의 경우 2.45%로 예상되지만 한미 FTA는 고작 0.56%에 그칠 것이라 분석하였다.
잔뜩 굶주린 미국과의 FTA
게다가 정부당국이 그토록 홍보하는 미국의 구매력도 예전만 못하다.
IMF는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한 금융기관의 손실은 총 4조 1000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약 3조 달러 가량이 미국금융독점자본의 손실이라 추정하였다. 미국은 이른바 양적완화조치로 달러를 풀어 경제위기를 타개해보려고 하였지만 도리어 재정지출이 늘어나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5월 16일,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미 재무장관은 "미국 연방정부 공공부문 총 부채총액이 법정한도인 14조 2940억 달러에 도달했다"고 선언하였다. 공공부문 빚이 국가 GDP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 연방정부는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지출을 9170억 달러 줄이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정부부채 규모를 증액할 수 있었다.
미국의 재정지출 감소는 의료, 국방, 교육, 기술 등 미국 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민들의 사회보장제도가 악화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미국민의 사회보장제도가 악화된다는 것은 미국가계의 경제부담이 증대되어 미국인들의 상품 구매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학적인 경제위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미국은 기존의 G7을 G20으로 확대 개편하며 주변국의 재정지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그리스, 포르투강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재정위기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확대되는 양상에 있다. 미국의 위기해법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처지가 궁색한 조건에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번영할 수 있다는 구상은 과연 누구의 주장인가? 이미 대표적인 대미 수출국인 중국은 대미 수출에 의존하던 기존의 경제노선을 내수경제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현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거론하는 국가들은 한국과 더불어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TPP(Trans-Pacific Partnership or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정) 체결 대상국들에게 국한된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 내에 들어있는 나라, 미국의 입김이 잘 먹히는 국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지금의 한미 FTA는 한국보다 오히려 미국이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2011년 10월12일, 한미 FTA 이행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켰는데 정부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지 9일 만에, 의회 회기 일수로는 불과 엿새 만에 법안 처리가 끝나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다. 미 의회는 한미 FTA를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10월 13일 미 의회 연설에 사상 최다인 무려 45차례의 박수를 보내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이만큼 미국정부는 한미 FTA를 고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나라당이 한미 FTA 법안을 비공개로 통과시키려다 폭로되고,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대혼란 속에서야 가까스로 비준되었다. 야권이 한미 FTA 비준 동의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한미 FTA로 취업이 늘고, 경제적 혜택이 늘어나는 것은 미국 청년들에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 의회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려 45차례나 박수를 보낸 이유이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장밋빛 기대는 금물이다. 이것이 국회의원들이 최루탄을 터뜨리면서까지 한나라당의 FTA 날치기 통과에 저항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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