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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저지] 대안 품은 저항으로 나서야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1. 11. 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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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우정 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남소연
홍준표

 

대통령은 다행이라 했고, 국민들은 불행이라 했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루탄을 터뜨렸다. 생애 처음으로 최루탄 냄새를 맛보았을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고작 40여 명의 야당 의원들의 절규를 비웃듯 연신 찬성 버튼을 눌러 댔다. 여기에는 지난해 또 다시 날치기에 동참하면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공언했던 황우여, 남경필, 이한구, 권영세, 신상진, 구상찬, 김선동, 김세연, 김장수, 성윤환, 윤석용, 주광덕 의원도 있었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흡족한 듯 '다행'을 연발하는 대통령을 비롯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날치기를 성공시킨 정부여당, 그리고 사용자측 대표 단체인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반면 진보·개혁정당을 비롯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는 분노를 터뜨렸다. 사장님들은 반색하고 노동자는 분노하는 모습은 한미FTA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고 손해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공중파 언론은 날치기와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쏟아내기 바쁘다. 누구는 세계화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쉬움이 크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이다. 그러나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유린당하는 날치기 행태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방송은 보기 어렵다. 그토록 공중파 길들이기에 집착한 이 정권의 성과다.

 

2011년 11월 22일 닥친, 민주주의의 위기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위기는 비단 경제적 이해관계의 측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선 주권이 무력화된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비롯해 한미FTA에 숨겨져 있는 각종 독소조항은 국민국가 범위에 머물러있는 정치가 이를 뛰어넘어 활동하는 경제를 규제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초국적 시장의 우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이제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는 구현되기 어렵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밝힌 우리 헌법 119조 2항의 무력화다. 

 

대의제도 위기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집권여당의 날치기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 국민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중대한 의제를, 소수의 정치엘리트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결정했느냐의 문제다.

 

1500페이지나 되는 한미FTA 협정문을 다 읽어본 의원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질문도 핵심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협정문 자체가 일반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까지도 제대로 읽어볼 수 없는 분량으로, 난해한 문구로, 어려운 전문용어로 도배질되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협정문은 '읽어볼 수 없도록' 쓰여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한 이들이 정치를 도맡아 해야 한다는 2011년 11월 22일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실상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대부분 읽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계약서에 정당 보스가 시키는 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탕탕탕' 찬성 도장을 찍어대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그들은 염치를 모른다.

 

뛰어나온 야당, 효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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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주도로 한미FTA 비준안이 강행처리된 가운데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등 지도부가 굳은 표정으로 2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있다.
ⓒ 남소연
김진표

뒤통수를 맞았던 야권은 날치기 이후 재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당은 당장 모든 국회일정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헌법소원 청구와 한나라당 지도부 사퇴도 요구했다.

 

덕분에 예산안을 비롯해 각종 민생법안들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초 민주당에서는 한미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하면 국회가 마비될 것이기 때문에 먼저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한미FTA를 다루자고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의 기습작전 덕에 물거품이 됐다.

 

물론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얼마나 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나라당이 당초 24일로 예정된 본회의를 당겨서 기습 처리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한미FTA에 대해 가장 일관적이며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민주노동당은 좀 더 강경하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퇴진운동을 선언했다. 2012년 예산심의를 포함한 모든 국회일정 거부와 장외투쟁도 약속했다. 그러나 역시 소수정당의 한계가 발목 잡는다.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2009년 7월 미디어법 처리 때와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직후에도 야권은 한두 달씩 장외투쟁에 나섰다. 그럼에도 올해 또다시 날치기가 자행된 것을 보면 야당의 장외투쟁이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바꾸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차피 합의와 토론은 물 건너가고 힘과 힘의 대결과 충돌이 해법이 된 이상, 다수의석을 점하지 못하는 야당의 힘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끝나지 않은 싸움, 믿을 것은 국민뿐

 

역시 이번에도, 믿을 것은 국민뿐이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날치기 소식에 5000여 명이 모였고, 쌀쌀해진 날씨에도 물대포는 물을 뿜었다. 본회의장의 최루탄 투척을 '테러'라 규정했던 정부 여당은 자신의 날치기가, 국민을 향한 물대포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국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중대사에도, 아니 중대사일수록 날치기를 주저 않는 저 저돌적인 오만함을 저지할 힘은 국민의 힘 이외에 찾기 어렵다. 2008년 촛불을 들고 나선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해온 그들에게 또 국민의 심판을 외쳐봐야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냉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황이 다르다. 총선과 대선이 코앞이다.

 

2008년 촛불이 그토록 무시당하고 멸시당한 배경에는 총선 직후라는 시기적 한계가 있었다. 대중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정권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소가 말했듯이 선거 직전에만 자유롭고 선거 이후에는 노예상태로 돌아가는 국민들에게 다시 자유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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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야5당-한미FTA저지범국본 정당연설회'에서 참가자들이 한미FTA 비준안 한나라당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며 '한미FTA저지', '이명박 심판', '한나라당 해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한미FTA

 

벌써 온라인에는 한미FTA 날치기에 동참한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이 제안되고 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날치기 당일인 22일 "정권을 심판하고 반민주 세력을 내년 총선에서 전원 낙선시키는 전면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낙선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2012년의 상황은 단순히 지금의 흐름을 저지하는 것 이상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대한 문제다.

 

한미FTA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방과 시장, 무한경쟁이 세계적 추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신자유주의적 광풍은 1%를 위해 희생해온 99%의 반란으로 잦아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심지어 여당에서도 부자들에 대한 증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탈규제와 사영화, 무한 경쟁을 주축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쇠락을 반영한다.

 

총선을 통해 의회권력을 재구성하고, 대선을 통해 국가권력을 재구성해야할 2012년의 상황은 이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해이기도 하다. 인적교체와 더불어 제도교체까지 이루는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무한경쟁보다는 연대와 공생을, 시장보다는 공적 규제를, 사영화보다는 공공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반대운동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저물어 가는 해를 부여잡으려는 집권여당의 파렴치한 날치기에 분노하는 동시에 야당에게, 또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대안을 요구하고 소통해야 할 일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미FTA 저지 운동과 날치기로 국민의 주권까지 팔아먹은 정치모리배들에 대한 심판과 함께, 밤새 대안적 미래를 토론하고 주장하며 소통해야 한다. 이것은 정당의 역할이라거나 저것은 운동의 역할이라는 식의 인위적 구분은 의미가 없다. 준비된 이들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이들부터 먼저 제안하고 소통을 이끌면 그 뿐이다.

 

중대한 기로다. 2008년 5월의 촛불이 시작한 패러다임 전환 운동은 이제 마지막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분노해야겠지만, 긴장도 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무엇보다 국민적 분노의 힘 조절도 필요하다. 2012년 4월까지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너무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 '날치기' 낙선운동? 그것으론 부족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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