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3년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출발점

토론게시판

by 붉은_달 2012. 3. 9. 09:00

본문

<칼럼> 북미간 ‘2.29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창현 (〈민족21〉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북미 양측이 3차 베이징 고위급회담 합의결과 발표 이후 후속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이번 주중 중국의 베이징(北京) 등에서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만나 대북 영양(식량) 지원과 관련된 후속협의를 가질 예정이고, 북한 태권도 대표단과 국립교향악단의 미국 공연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미회담에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23~24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3차 고위급회담 후 북미 양국에서 동시에 발표된 ‘2.29 합의’는 북한이 과거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발휘한 결과다. 우선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제재가 발효된 후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화와 제재는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 동안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불신의 표현’(an expression of distrust)”이라며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해제돼야 한다고 공식 요구했었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는 대북제재 해제를 6자회담 복귀의 선결조건으로 삼지 않았다. 

둘째, 북한은 2010년 1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한 이후 적어도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과 비핵화문제가 동시에 의제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번 합의에서는 이를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정전협정의 준수를 언급했지만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이 당장 미국과 한국이 받기 어려운 대북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2.29 합의’가 가능했던 셈이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수용에 대해 미 당국자들과 분석가들의 설명은 다르지만 북한이 상당한 양보를 했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한다고 전했다. 

다만 북한이 이번 합의가 ‘잠정적 조치’임을 시사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에 대한 제재해제와 경수로 제공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이 문제가 ‘적절한 시점’에 담보가 되지 않을 경우 합의 이행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측의 발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혹은 “농축활동을 임시중지 하고”,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실현”, “행정 실무적 조치들을 즉시 취하기로”, “미국은 조선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고”, “자주권 존중과 평등정신에서 쌍무관계를 개선”과 같은 사항들을 미국이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합의가 깨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를 후순위로 ‘양보’하면서도 이 문제들이 논의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비핵화 조치를 원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복선을 깔아놓은 셈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장기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미가 서로의 절실한 필요 때문에 ‘2.29 합의’라는 큰 틀에 합의가 이뤄졌으므로 돌발변수가 없는 한 미국 대선 때까지는 대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서는 북핵 상황 악화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그 핵심은 바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중단이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 프로그램 중단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가능성 차단에 골몰하는 시점에 나온 북한의 핵 활동 동결은 북한의 행동에 대한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올해 경제건설에 매진하면서 김정은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화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해외자본 유치가 절실하고, 대규모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6자회담 재개와 대북 경제제재 완화 또는 해제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2.29 합의’로 조성된 북미대화의 새로운 ‘국면’은 일정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번 합의 발표문에서 언급한 핵 활동의 임시 중단,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대북지원 모니터활동의 확대 등에 대해서는 이미 2년 전쯤 내부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특히 북미는 이번 합의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6자회담 재개에도 원칙적으로 합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발표문에 “6자회담이 재개되면 대북제재 해제와 경수로 제공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한다는 구절이 포함된 것이 이를 시사한다. 또한 북미가 다양한 분야의 교류와 추가 지원에 합의한 점도 주목된다. 과거 북미회담 과정을 되돌아볼 때 미국의 대북지원과 북미간의 문화교류는 단순히 지원과 교류에 그치고 않고 양국의 ‘신뢰’를 높여 회담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2.29 합의’로 조성된 ‘국면’이 6자회담이 재개돼 새로운 ‘단계’로 이행될 경우다. 이번 ‘2.29 합의’는 북미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 또한 북미 양국간에 당장 합의가 어려운 이견 사안은 가급적 원칙만 표방하고, 현실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부분에 대해서만 잠정 합의했다. 따라서 북한의 발표문에 나온 표현대로 하자면 6자회담이 열리는 시점까지는 “결실 있는 회담”이 되겠지만, 6자회담이 열리고 세부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대북제재 해제, 경수로 제공, 평화협정 논의문제가 대화의 주제로 부상되면 북미간에 격돌이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2.29 합의’ 과정에서 대체적인 논의는 있었겠지만 어느 시점에 이러한 사안을 논의할지, 미국이 이러한 사안들을 본격 논의할 준비가 돼 있는지 등이 관건이다. 

또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미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과 IAEA 시찰단 복귀 등 베이징 3차 북미대화에서 합의한 비핵화 사전조치의 철저한 이행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평화협정이나 경수로 제공 등에 대해서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기존의 핵개발 계획을 포기한 뒤에나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북미대화 진전과 함께 남북대화도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에서 형식적으로 남북비핵화회담이 열릴 수는 있겠지만 남북 당국간 회담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전제로 내세우고 있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이명박 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잠정적으로 이뤄진 ‘2.29 합의’가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고, 6자회담에서 한반도비핵화에 진전을 이루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성실한 합의 이행뿐만 아니라 한미의 전향적인 태도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2.29 합의’는 미국과 한국의 대선 때까지만 유효한 대화틀이며,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과 한국의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새로운 ‘단계’로 이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에서 올해 정권 교체 또는 재선이 이뤄지기 때문에 2013년에 가서야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새로운 틀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2.29 합의’는 2013년 한반도정세의 격변을 준비하는 출발선에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관련글 더보기